▶ LACMA 한국현대작가전을 준비한다: 아티스트 - (2) 최정화
최정화 하면 유치찬란하게 알록달록한 싸구려 플래스틱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것도 산더미같이 쌓인, 엄청 조악하고 생경한, 무당집에라도 들어온 듯 정신 사납게 야한 색깔들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최정화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시장통과 싸구려와 잡것들을 날것으로 쌓아올림으로써, 우아하고 세련된 명품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철퇴를 던지는 작가 최정화(47). 빡빡 머리에 두꺼운 뿔테안경을 쓴 그를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2007년12월 월트 디즈니홀 내 레드캣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은 LA타임스도 대문짝만하게 소개할 만큼 주목을 끈 전시회였다. 스스로를 ‘넝마주이’라고 부르는 그의 작품 재료는 소쿠리, 이태리타월, 빨래집게, 비닐, 트로피, 장난감, 조화, 폐품 같은 것들이고 전시장 주변의 벼룩시장이나 야적장에서 건져온 생필품들이 설치되기도 한다.
각종 싸구려 플래스틱 폐품 소재로 물질 만능주의 꼬집어
한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날조에 날림을 더하면 완성”이라고 말한 최정화는 덧붙여 아주 간단하고 확실하며 구체적으로 그것을 표현한 바 있다.
“생생 싱싱 빠글빠글 짬뽕 빨리빨리 엉터리 색색 부실 와글와글”.
“미술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기존의 룰에 도전하는 최정화는 자신을 작가 혹은 미술가가 아니라 디자이너 혹은 건축가라고 표현한다. 사실 그는 일반 작가들이 하는 일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일들을 한다. 무용가의 무대 디자인을 맡기도 하고, 영화(‘나쁜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의 미술감독을 하기도 하며, 20년전 설립한 ‘가슴시각개발연구소’에서 작게는 명함과 잡지로부터 인테리어와 건축, 공공미술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있다. 기술이 아니라 손과 가슴으로 일한다는 이 연구소는 그동안 수많은 문화예술공간은 물론 다양한 패션매장들과 심지어 술집들까지 인테리어를 성공적으로 유치해 현재 대규모의 주식회사로 발전했다.
최정화는 현재 국제 비엔날레나 해외전시에 가장 자주 초대받는 아티스트다. 올해만도 1월말 런던의 한국문화원 갤러리에서 ‘번갯불이 번쩍-전광석화’ 개인전을 성황리에 끝냈고, 3월에는 일본 토와다 미술관에서 대형 개인전 ‘OK’전을 가졌으며, 최근에는 중국 베이징의 갤러리에서 보여준 작품 ‘엎드려 뻗쳐’가 큰 호응을 받았다.
일년이면 반 이상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작업하지만 그는 어느 곳엘 가도 미술관이나 전시장은 찾지 않고 그 지역 재래시장과 벼룩시장을 찾아다닌다. 과거들만 갇혀있는 죽어있는 뮤지엄이 아닌 잡것과 날것들이 살아 숨쉬는 뮤지엄을 지향하는 그는 그가 원하는 것을 2006년 일민미술관에서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연출 최정화’ 전을 통해 확실히 보여주었다. 시장바닥처럼 떠들썩한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은 수천개의 싸구려 플래스틱 바구니 옆에 설치된 수백만달러짜리 유명 미술품을 같이 구경했고, 즉석에서 ‘작품’을 흥정하고 구매하는 등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진짜 미술놀이에 다같이 동참했던 것이다.
그는 또 2008년 가을 서울디자인올림픽에서 ‘천만시민 한마음 프로젝트- 모이자 모으자!’를 벌여 화제가 됐는데, 그것은 전국에서 시민들이 가져온 폐플래스틱 생활용기 171만2,462개를 모아 40일간 488개의 트럭과 3,638명이 동원되어 잠실 올림픽경기장 전체를 감싸는 세계 최대의 환경설치예술이었다. 플래스틱 없이는 살 수 없는 오늘 한국인의 삶 ‘플라스틱 대한민국’을 그처럼 극명하게 보여준 작가는 없었다.
홍익대 회화과를 나와 중앙미술대전 대상, 일민미술상,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1993년 뉴욕 퀸즈 미술관 ‘태평양을 건너서’ 전 참가 이후 지난 15년 동안 국내외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갖거나 참가했고, 종로 2가 밀레니엄 타워 뒤 ‘세기의 선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뉴욕 퀸즈미술관, 워커아트센터, 프랑스 퐁피두센터,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작업했으며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빨간 소쿠리들로 ‘욕망장성’을 쌓아 주목받았다. 이번 라크마 전에서는 플라스틱 용기들로 엮어서 펜스를 만든 ‘해피해피!!’와 ‘웰컴웰컴’ 등 3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2006년 일민박물관에서 가졌던 ‘믿거나 말거나’ 전시회.
온갖 플라스틱 생활용기들을 엮어서 펜스를 만든 ‘해피해피!!’
“나에게 한국은 모란시장”
이번 라크마 한국현대작가전에 한국 측 큐레이터로 참여한 김선정 사무소(SAMUSO) 대표는 박이소와 최정화를 199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했던 두 작가로 꼽으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최정화는 한국의 근대화가 만들어내 온 대량생산과 소비를 과잉 집착과 과잉 소비라는 키워드로 해석하여 특유의 한국적 팝을 만들어냈다. 예컨대 빠른 개발에 따른 구조의 유약성과 무너짐을 ‘쌓기’를 통해 보여준다”
다음은 이번 전시를 앞두고 김선정 큐레이터가 최정화를 인터뷰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김: 최정화에게 아트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인가
최: 비즈니스 아트, 아트 비즈니스, 비즈니스 아트 비즈니스다.
김: 당신에게 한국은 무엇인가
최: 모란시장이다.
김: 당신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최: 적절하고 잘 된 복제.
김: 요즘 해외에서 전시를 많이 하는데 그에 대한 견해는
최: 한국에서 전시 오퍼가 없다.
김: 당신에게 ‘차용’이란 무엇인가
최: 우리가 모두 하는 일이다. 먹는 일처럼.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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