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스러움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됐던 노무현이 지금은 바보스러움 때문에 수치와 수모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그는 지난 2003년 아무런 지역적, 정치적 기반 없이 단기필마로 대통령 경선에 뛰어들었다. 누가 봐도 만용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이런 예상을 비웃듯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며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힘은 대의를 위해 눈앞의 이익을 버릴 줄 아는 정치인이라는 우직스런 이미지였다.
그런 노무현이 생애 최대의 굴욕을 당하고 있다. 바보처럼 처신한 결과이다. 기득권층의 의구심과 냉소 속에 청와대에 입성한 그에게는 애초부터 전직들보다 훨씬 엄격한 처신과 자기관리가 요구됐다. 중국 고사에 ‘3년청치부’(三年淸治府) 십만설화은(十萬雪花銀)’이라고 했다. 높은 자리에 3년만 있으면 아무리 청렴해도 은 10만냥을 모으게 된다는 것이다. 권력자가 깨끗하기란 그만큼 힘든 것이다.
그런데 적대적 시선에 둘러싸여 있던 노무현은 그런 처신을 못하고 손가락질의 빌미를 제공했다. 타이거 우즈가 눈물을 흘린 것도 노무현 탓이라고 하던 반노무현 진영이다. 그는 유행처럼 번지던 노무현 댓글달기 놀이의 의미를 똑바로 인식하고 터럭만큼도 책잡히지 않을 처신을 했어야 했다.
현재 노무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공방의 핵심은 그에게 건네진 돈의 규모와 성격이다. 박연차의 진술과 노무현의 해명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노무현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가 저지른 잘못의 본질이 사라지거나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연구해 온 영국의 생물학자 매트 리들리는 선물에 대해 “한편으로는 상대에 호의를 베풀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량이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물을 받는 사람을 보답이라는 의무감에 묶어 두기 위한 것”이라고 성격을 규정지었다. 선물과 뇌물 간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돈을 건네받은 노무현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건넸던 박연차가 리들리가 꼬집은 속셈을 염두에 두었음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어김없이 반복되는 사정의 칼춤을 보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전 정권에 서슬 퍼런 메스를 들이댔다가 몇 년 후 똑같이 몰락의 길을 걸어가는 정권들을 보면서 정치권력은 물고기의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죽은 정권을 부관참시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반복의 사슬을 절대 끊어낼 수 없다. 살아 있는 권력의 현재 진행형인 비리를 파헤치고 싹을 잘라낼 수 있어야만 ‘메스 질’은 진정으로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는 행위가 된다.
지난 4월초 LA의 연방법원에서는 미국정부와 이탈리아정부가 연관된 케이스에 대한 디포지션이 열렸다. 이를 위해 이탈리아로부터 법무장관과 마피아검사가 직접 날아왔다. 며칠 동안 이들의 이탈리아-영어 통역을 맡았던 한 한인 통역사는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들려줬다.
일국의 법무장관과 검사임에도 누구의 공항 영접도 없었던 것은 물론 체류기간 내내 직접 택시를 타고 다니며 일을 보더라는 것이다. 한국적인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영사관에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건 보기 좋은 일이 아닐 뿐더러 국가의 힘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1990년대에 ‘마니 뿔리테’(Mani Pulite)라는 대대적인 부정부패 추방운동을 벌였던 이탈리아 검찰의 직계다. ‘깨끗한 손’을 뜻하는 ‘마니 뿔리테’를 통해 무려 3,000명의 정·재계 인사가 체포, 구속되고 전체 국회의원의 4분의1가량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마니 뿔리테’는 부패의 청산과 깨끗한 정치를 뜻하는 상징어가 됐다.
이번 노무현 수사는 한국판 ‘마니 뿔리테’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 노무현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는 정도로 마무리하기에는 요란한 칼춤이 너무 아깝다. 그런 카타르시스라면 통쾌한 영화 몇 편 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벌써부터 노무현 수사는 ‘토끼걸음’이고 현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혐의에 대한 수사는 ‘거북이걸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몇 년 후 똑같은 드라마를 봐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국민과 정부는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운 적이 없고 또한 역사로부터 얻은 원칙에 따라 행동한 적도 없다”고 말한 사람은 철학자 헤겔이었다. 국민과 정권의 짧은 기억력에 대한 헤겔의 준엄한 꾸지람이 실감나게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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