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웃은 클린턴을 내심 두려워하며 존경하고 있다’ - 근 10년 전, 그러니까 클린턴 행정부 말 때 나온 말로 기억된다.
온갖 상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는 곳이 할리웃이다. 불륜쯤은 예사다. 엽기에 가까운 별 해괴망측한 아이디어도 영상화된다. 그 할리웃이 그러나 생각해내지 못한 것이 있다.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불륜의 정사를 벌인다. 그것도 딸 또래의 어린 여대생 인턴과.
그런 일을 클린턴은 실제로 해냈다. 그러니 할리웃은 클린턴에게 경외감을 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막장’이란 말이 한국에서 유행이다. 삶의 기복이 심한 사람은 ‘막장인생’이다. 제멋대로 막가파식 행동을 한다. 그런 사람은 ‘막장인간’이고. 도무지 이야기가 안 된다. 리얼리티를 찾을 수 없다. 그런 드라마를 ‘막장드라마’라고 부르는 식으로.
그 ‘막장드라마’가 문제인 모양이다. 갈 데까지 갔다. 불륜 정도가 아니다. 패륜에 가깝다. 그런 행태의 인간상들이 브라운관을 통해 안방을 파고든다. 스토리라는 것도 그렇다. 배신과 복수로만 점철됐다. 상황의 급반전도 비상식적이다. 하여튼 말도 안 되는 스토리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욕을 해댄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그 ‘막장드라마’에 열광한다. 한 한국의 문화평론가는 그래서 2009년 한국을 지배하는 코드를 ‘막장’이라고 지칭했던가.
‘막장드라마’는 그러나 픽션이 아니다. 현실이다. 적어도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한 때는 기고만장했었다. 권좌에서 물러나서도 그 기세는 여전했다. 사사건건 훈수를 하려 든다. 사실상 상왕(上王) 행세다. 그 전직 대통령의 행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알고 보았더니 파렴치범 수준이다.
그게 폭로되면서 상황은 돌변한다. 급반전이다. 5년마다 되풀이되는 이 계절병은 시간이 가면서 종전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막장드라마’로서 그 요소가 더욱 정치(精緻)하고 교묘해지고 있다고 할까.
대통령의 형이 구속됐다. 조카사위가 체포되고, 대통령의 아들도 구속될 상황이다. 가신은 물론이고 패밀리같이 여겼던 사람들은 모두 철창행이다. 거기다가 대통령이었던 사람과 전직 영부인이 검찰에 출두하게 됐다.
모든 게 신기록이다. 그렇지만 ‘영부인 의혹’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세계 신기록에 가깝다.
이 드라마에서 압권은 대통령이 재임 중에 청와대로 돈 가방이 전달되는 장면이다. 두고두고 기억될 대사는 ‘이권개입하다 걸리면 패가망신 시키겠다’는 주인공의 모놀로그다.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입만 열면 정권의 도덕성을 주창하면서 ‘가진 자’를 부패세력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패가망신’을 운운했던 것이다. 드라마의 전반부, 기고만장하던 시절에 한 그 말이 자신을 옥죄는 올가미가 됐다. 기가 막히는 대반전이다.
그 극적인 대반전과 함께 대한민국의 권위란 권위는 모두 무너져 내리고 있다. ‘주인공 노무현’뿐이 아니다. 2명의 전직 국회의장이 검찰송환의 대상이 됐다. 모모한 사법부의 중추들도 수사대상이다. 한국의 행정, 입법, 사법 3부가 모두가 흔들리고 있는 꼴이다.
이 ‘막장드라마’를 가능케 하는 배경은 그러면 무엇일까. 이것저것이 머리를 스친다. 그러다가 한 부문에 머문다. 점술중독 사태라고 했나. 한국사회가 맞고 있는 이 병리현상과 혹시 무관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인권을 말한다. 민주주의를 논한다. 종교적으로는 불교에, 기독교의 옷을 입었다. 그러나 한국인 밑바닥 정서에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무속의 정신세계다. 그 무속신앙은 뇌물을 근본 매개로 존립한다. 무당을 통해 정령에게 뇌물을 주어야 만사형통이다.
그 무속신앙에는 내일이 없다. 공동체 정신이 없다. 오직 ‘나와 내 식구’만 있을 뿐이다. 법치의 개념도 없다. 무속의 역사 시계(視界)에는 미래가 없다. 오로지 오늘만 있을 뿐이다. 그 연장이 뇌물주의에 내일을 모르는 찰나주의다.
그 무속신앙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전통신앙이란 미명하에 양지로 나왔다. 제도권 교육의 영역으로까지 파고들어 대학에 역술관련 학과가 잇달아 개설되고 있다. 지난 5년 참여정권 시절의 현상으로, 그 결과는 점술중독 만연이다.
그 가장 심각한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한국의 정치인들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말도 안 되는 ‘막장정치드라마’는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막장’이 키워드인 사회는 그 영이 병든 사회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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