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CMA 한국현대작가전을 준비한다. - 참가 아티스트 소개
손꼽아 기다려온 LA 카운티미술관(LACMA)의 ‘당신의 밝은 미래: 한국 현대작가 12인전’(Your Bright Future: 12 Contemporary Artists from Korea) 오프닝(6월28일)이 12주 앞으로 다가왔다. 그 12주 동안 우리는 할 일이 있다. 전시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공부하는 일이다. 현대미술은 그냥 보아서는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특히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보여주는 컨템포러리 아트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만큼 기발하고 독창적이며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저 설렁설렁 ‘구경’이나 하러 나섰다가는 아무 것도 구경하지 못하는 낭패를 볼 수가 있으므로 이번 주부터 한명씩 작가 프로필을 소개하며 집중적으로 준비하려고 한다. 박이소, 최정화, 김홍석, 전준호, 김범, 김수자, 구정아, 임민욱, 박주연, 서도호, 양혜규, 장영혜 중공업-12명의 아티스트들은 한국뿐 아니라 국제미술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들이며, 이중 절반은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 작업하고 있다. 회화보다는 인스톨레이션, 비디오 아트, 컴퓨터 애니메이션, 조각 등 대형 설치미술의 세계로 인도할 이들의 예술,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80년대 뉴욕서 비주류 작가 알리기 힘써
한국 미술계 포스트모더니즘 등 소개 주목
2004년 타계… 예술가로서 공적 책임 강조
박이소(1957-2004)는 이번 한국현대미술전 참여작가 중 유일하게 타계한 작가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심장마비로 47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그는 늘 고독하고 병약했으며, 미술사의 어느 누구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무이한 세계를 구축했던 정신의 예술가라고 주위에서는 말한다.
본명은 박철호, 필명이 박모인 박이소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후 1982년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다녔으며, 1985년 뉴욕 브루클린 지역에서 비주류 미술과 제3세계 작가들을 소개하는 공간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를 운영하였다.
한국인 유학생 작가로서 미국 내 문화 소수자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정보지 발간, 퍼포먼스와 세미나 등을 개최하는 등 이 대안 공간을 지역 공동체와의 활발한 교류 및 대화의 장으로 사용했던 박이소의 활동은 80년대 중반에 문화적으로 소외된 브루클린 지역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미국의 언론들이 주목하기도 했다.
그는 약 15년간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지역사회와 분리된 채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갤러리에 전시를 하는 작가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자신의 고민과 작업이 함께 살아 움직이는 작가가 되기를 원했다. 마이너 인저리의 활동을 바탕으로 뉴욕 브롱스 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졌고, 뉴욕예술재단상과 미연방예술기금상,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받았다.
회화 조각 설치를 넘나드는 창작으로 ‘정직한 행복’을 추구했던 박이소는 80년대에 이미 플래스틱, 스티로폼, 시멘트, 합판, 심지어 간장 같은 비전통적인 미술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정형화된 예술의 틀을 깨는 시도를 보였다. ‘정직성’을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던 그는 빌리 조얼의 노래 ‘정직’(Honesty)을 자신의 말로 번역해 노래하는 작업을 남기기도 했고, 솔직하게 말하기, 진실되게 말하기는 그의 삶의 화두였다. 이같은 그의 삶은 그의 미술과 전혀 분리되지 않았고 예술가로서의 공적인 책임에 대해 중요한 흔적들을 남겼다.
‘열심히 노력하여 재능을 꽃피우자’ ‘잡초도 자란다’ ‘우리는 행복해요’ 같은 뻔하고 허접한 말로 진실을 표현하고자 했던 그는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었지만 비관적이지는 않았으며, 때로 깊은 유머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의 미술교육에 대해 ‘시간낭비’라고 말했던 그는 1995년 귀국해 한국 미술계에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연구 방법론을 소개하고 새로운 전문 이론서를 우리말로 번역한 책도 여럿 남겼으며 사디(SADI: Samsung Art & Design Institute)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젊은이들의 미술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국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한국과 미국, 유럽 등지의 국제미술제에 작품을 출품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6회의 개인전(유작전 포함)이 열렸다.
박이소의 대표작들은 광주비엔날레에서 팔각성냥갑에 그려진 유엔탑을 실제로 만들어 세운 ‘유엔탑’(1997), 북두칠성에 별 하나를 더 그려 넣음으로써 오해와 소통의 경계를 표현한 ‘북두팔성’(1999),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 참가 작가로 초빙돼 자본주의를 풍자와 냉소로 표현한 ‘201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10선’(2003), 4개의 카메라가 4개의 프로젝터를 통해 바깥 풍경을 실내 벽면에 실시간 투사하는 ‘샌안토니오의 하늘’(2000), 대형 화폭에 아무도 모르는 도시이름들을 가득 채움으로써 인터넷과 글로벌화를 풍자한 ‘와이드 월드 와이드’(2003) 등이 있다.
이번 전시회의 타이틀 ‘당신의 밝은 미래’는 박이소의 작품 제목에서 가져온 것이며, 그는 이것을 북한의 선전구호에서 따왔다. 눈이 멀 만큼 밝은 10개의 조명을 설치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우리의 행복을 현실의 빛으로 보여준 ‘당신의 밝은 미래’ 외에도 그는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뻔뻔스럽고 충격적인 북한 선전구호를 대형 빌보드 작품으로 만들어 행복이란 무엇인지, 이처럼 유치하고 우스운 것인지, 혹시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아닌지, 보는 이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은 사망 직후인 2004년 8월 부산비엔날레에 유작으로 설치 전시됐다.
이번 라크마 전시회에는 ‘당신의 밝은 미래’와 ‘샌안토니오의 하늘’을 이곳에서 조명한 ‘로스앤젤레스/ 휴스턴의 하늘’, ‘우리는 행복해요’, ‘와이드 월드 와이드’가 전시된다.
박이소의 작품 ‘당신의 밝은 미래’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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