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나 돼야 시작하는 심야 토크쇼 시청률이 요즘 많이 오르고 있다. 일부 올빼미 족들이나 봤던 심야 토크쇼 시청률이 뛰고 있는 것은 인기 진행자가 새로 기용됐거나 프로그램이 갑자기 재미있어져서가 아니다. 불황 속에 불안과 분노로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미국인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접시깨기’ 업소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도 심야 토크쇼 시청률 상승과 맥을 같이 하는 현상이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접시깨기 업소를 찾아 마음껏 접시를 내던지며 이것을 해소하려 한다. 접시와 안전 기어 등을 제공하는 접시깨기 업소는 1인당 25달러라는 만만치 않은 요금에도 불구하고 날로 성업 중이다.
얼마 전 구제 금융을 받아 임직원들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한 AIG 그룹의 도덕불감증에 오바마 대통령이 분노를 표시하고 온 미국이 들끓었다. 실업과 비즈니스 부진 같은 개인적 상황 때문에 가뜩이나 화나는데 여기에다 월스트릿과 기업들의 파렴치와 꼴불견이 부채질을 해댄다.
이래저래 미국의 분노지수는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이것을 실증하기라도 하듯 지난 몇 주 사이에 수건의 집단 총격사건이 발생해 50명에 가까운 귀한 인명이 희생됐다. 개별적인 사유는 달라도 분노가 가장 파괴적인 형태로 표출되면서 발생한 참사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접시깨기나 주먹으로 베개치기 같은 공격적인 행동은 분노완화에 그런대로 도움이 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물론 접시깨기 업소 주인들은 “효과 만점”이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임상적으로 분노조절을 연구해 온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접시를 깨뜨릴 때 순간적으로 분노가 해소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느낌일 뿐이고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격적인 행동으로 분노를 풀려다 보면 분노가 사라지기는커녕 해소되지 않은 채 더 큰 분노를 낳는다는 것이 최근 연구들이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소리 지르는 것 역시 더 큰 분노를 불러올 뿐이다.
분노를 담아 두기만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화가 난다고 곧바로 공격적인 행동으로 이것을 해소하려 들다보면 파괴적인 에너지가 되기 십상이다. 억압도 나쁘지만 감정적인 발산 역시 해롭다는 말이다.
약의 효과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듯 분노조절 역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테크닉과 방법을 숙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분노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분노는 한마디로 삶과 사람에 대해 ‘잘못된 기대’를 갖는데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와 원치 않은 것이 일어날 때,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이 움직여 주지 않을 때 분노가 고개를 든다.
삶과 사람은 본래가 울퉁불퉁한 존재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튀어주지를 않는다. 비현실적인 기대를 버리는 것만으로도 분노는 훨씬 다루기 수월한 감정이 된다.
분노의 감정이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이제 새삼스런 사실이 아니다. 미국인들 가운데 20% 정도가 건강을 해칠 정도의 적대감을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는데 지금 다시 조사해 본다면 이 비율은 더 높아져 있을 것이다.
분노로 인한 건강문제는 의료비 지출로 이어진다. 또 감정을 잘 컨트롤 하는 종업원들의 연봉이 감정적인 종업원들보다 1만달러 이상 더 높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고 보면 분노를 잘 조절하는 일은 마음의 평화뿐 아니라 주머니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분노관리의 경제학’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흔히 “화를 잘 풀면 인생이 풀린다”고 하는데 시련의 계절에 한층 더 피부에 와 닿는 말이다. 어려운 경제를 헤쳐 나가고 있는 이때에 ‘자산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분노관리’이다. 공격적인 분노는 더 많은 분노를 낳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많은 접시를 깨뜨려도 미국의 분노지수는 낮아지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심야 토크쇼 시청률은 언제쯤이나 뚝 떨어지려나.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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