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합격 통보가 마무리되는 지금 사하라 사막에서는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모로코에서 출발한 마라토너들은 광활한 사막 길을 7일 동안 250km 달린다.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열기 속에 식량·장비를 짊어지고 쨍쨍 내리쬐는 햇빛 아래 일주일씩 달린다니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생텍쥐페리처럼 조난이라도 당한다면 모를까 누가 그 험한 곳을 찾아갈까 싶지만 사하라 마라톤 대회에는 매년 800명이 넘게 참가한다. 사람들의 관심과 열정은 다양하다.
지금쯤 12학년 학생들은 올가을 어느 대학에 진학할지 대개 윤곽이 잡혔다. ‘어느 대학’은 우리에게 끊어버리기 어려운 심리적 족쇄이다. 한국에서는 합격자 발표시즌이면 ‘고3학생 집에 전화하지 말 것’이 매너로 되어있다. 학생이 낙방했거나 너무 수준 낮은 대학에 합격했을 경우, 안부를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서로가 민망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이 미주한인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저 집 아이가 12학년인데 어느 대학에 가는지 궁금하지만 묻기가 조심스럽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UC의 치열해진 경쟁률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와는 달리 UC 문턱이 다락같이 높아졌지만 ‘최소한 UC’라는 한인학부모들의 기대는 여전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올해 아이를 대학에 보내는 40대 주부도 학교 순위 무시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아이가 대학 갈 때가 되니 ‘적어도 UC는…’ 하는 기대가 생기는 거예요”
그의 아들은 한인학생들이 너덧밖에 안 되는 작은 사립학교에 다닌다. 한인들의 ‘최소한 UC’ 기대를 알 리가 없는 카운슬러는 의아해하더라고 했다. 아이의 성격이나 기질로 볼 때 작은 사립대학이나 칼스테이트 계열이 맞는 데 “왜 자꾸 UC, UC 하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왜 ‘UC, UC’ 하는 걸까. 아이의 인생항로가 사하라 사막 같이 험하고 고달픈 길이 아니기를, 널찍한 고속도로가 쭉 뻗은 탄탄대로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학교 순위가 그대로 사회적 성공과 연결되는 사회에서 자라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무대는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하겠다. ‘어느 대학’이라는 졸업장의 위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름’ 보다 재능과 열정이 성공을 좌우하는 사회이다. 빌 게이츠가 다른 똑똑한 사람들처럼 법대에 가서 변호사로 만족했다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남들 하듯 UC 나와서 적당한 기업 직장인이 되었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손실인가.
요즘 내 주위에는 좀 색다른 학생들이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과는 다른 기준으로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 그래서 신선한 학생들이다.
한 학생은 친지의 아들로 요리학교를 나와 주방장이 되는 것이 꿈이다. 화이트칼라 전문직을 자녀의 직업으로 막연히 생각하는 것이 한인부모들이고 보면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전공이다. 친지 역시 처음에는 아들이 마음을 바꾸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들의 뜻이 확고한 것을 알고는 한가지 제안을 했다. 먼저 일반 대학에 가서 호텔 경영학을 공부한 후 그 다음에 요리학교를 가라는 권유였다. 아이는 현재 UC를 비롯, 몇몇 이름 있는 대학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칼폴리 포모나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그 학교의 호텔 경영학과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또 한 학생은 후배의 아들로 북가주 제일 꼭대기의 험볼트 주립대학으로 간다. 집에서 600마일 떨어진 산골 학교로 가겠다는 말을 듣고 후배 역시 처음에는 펄펄 뛰며 반대했다.
하지만 “인생을 너무 스트레스 속에 살고 싶지 않다. 작은 학교에 가서 교수들과 가깝게 지내며 재미있게 공부하고 싶다. 환경·생물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데 그 학교의 환경자원공학 분야가 좋다고 한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 “네 인생 너 원하는 대로 살아보라”고 훨훨 날려 보내주는 것이다.
대학은 인생항로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꿈과 열정이 선택의 기준이 되었으면 한다. 꿈이 있다면 사실 ‘어디’는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다.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생텍쥐페리는 덕분에 ‘어린 왕자’라는 보물을 건져내지 않았는가. 인생의 ‘탄탄대로’에서는 얻기 힘든 수확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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