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산을 해야 했으니까… 가끔씩 쉬어가며 내려가기를 끝도 없이 했다. 아니 왜 이리 먼 걸까? 올라오는 길보다 훨씬 더 멀게 느껴졌다. 모두들 물이 떨어져 타는 목을 달래느라 견디기 힘든 어려움까지 겪어야 했다. 얼마를 내려왔을까? 저 멀리 산 아래 노란 텐트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면 이렇게 반가우려나…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 텐트를 본 순간 내 다리에는 다시금 기운이 솟았다. 가까이 보이던 그 캠핑장도 얼마나 멀던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어렵게 도착한 바라푸 캠프
“묵을 수 없다” 규정에 아연
정신력이 이겼다는 긍지 남아
한참을 지난 후에 그 곳에 도착해 보니 실망스러워라… 그 곳은 우리의 캠프가 아니었다. 우리의 캠프는 어디일까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거의 다 왔다고 한다. 도대체 어디인 거야~~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다.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지만 화낼 기력도 없다.
그러기를 2~3번 반복하고 나서야 드디어 우리의 캠핑 사이트를 만났다. 거의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너무 반가워 눈물이 저절로 났다. 먼저 내려오신 남진 언니, 주 약사님이 우리를 반겨 주셨고, 포터들이 줄지어 우리를 환영해 주며 주스를 건네주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텐트로 들어가 쓰러져버렸다.
사실 오늘 스케줄은 바라푸 캠프(Barafu Camp)에서 10마일 더 가야 하는 음웨카 캠프(Mweka Camp)까지의 이동이었지만 내려오며 우리끼리는 더 이상 못가니 오늘 하루 더 바라푸 캠프에서 머물자고 입을 맞추었다. 지금부터 10마일을 더 간다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은 겹친다고 했던가! 탄자니아 국립공원 규정에 이 바라푸 캠프는 하산해서 묵을 수 없는 곳이란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아무리 우겨 봐도 그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No”였다. 그리고 주방팀은 이미 하산했다고 전했다.
다들 죽어도 못 내려간다고 버텼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차선책으로 이 곳에서 5km 떨어진 밀레니엄 캠프(Millennium Camp)로 옮기기로 했다. 2시간 정도 걸려 밀레니엄 캠프에 도착하니 그 바닥난 기운은 아랑곳없이, 성공했다는 벅찬 마음에 주변경치도 돌아보게 되고 마음의 여유도 생겨 사진도 찍고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람의 정신력은 한계가 없는 모양이다.
아침·점심도 먹지 못한 채 거의 16시간의 긴 산행에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많은 사람이 서밋에 성공하고 덤으로 이 캠프장까지의 이동,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을 해낸 것이다.
지금은 가슴이 터질 듯이 뿌듯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었던 긴 여정의 하루였다.
▲11월 28일
오늘은 하산하는 날이다. 밀레니엄 캠프(6,000피트, 1,810m)에서 음웨카 게이트까지 가는 길로 예정 산행시간은 6시간이다.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 얼마나 깊은 잠을, 얼마나 오래 잤는지 모른다.
어제의 피로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온 세상이 기쁨으로 넘쳐보였고, 하늘도 어찌나 청명한지 우리의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하산길이 길어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이 생각나 일어나자마자 짐부터 싸기 시작했다. 해냈다는 그 자부심 하나가 내 마음의 숨어 있던 작은 찌꺼기까지 다 몰아내버렸다.
하 약사님과 미선씨가 있는 텐트에 놀러갔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서로의 얼굴에 놀라 웃음보를 터트렸다. 쳐다보고 웃고, 또 쳐다보고 웃고, 멈출 수가 없었다.
어제의 힘든 여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나 있는 것이었다. “K2 눈 좀 떠 봐!” “이거 다 뜬 거예요”
동그란 얼굴에 눈이 파묻혀버린 양배추 인형 바로 그 모습이었고, 나와 하 약사님도 거의 비슷한 모양새로 온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K2 하는 말이 나와 하 약사님은 부분적으로 보톡스를 맞아 이렇게 되고, 자기는 보톡스를 너무 많이 맞아 부작용이 생긴 것이라며 농담을 건네 더 크게 웃었다.
다들 정신력으로 버텼지만 몸이 힘들긴 힘들었구나!
양은형 총무
<재미한인산악회>
킬리만자로 서밋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원정대. 모두들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킬리만자로의 바라푸 캠프. 우리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싶었지만 국립공원 규정상 이 캠프는 하산해서 묵을 수 없는 곳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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