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한인연합회 인수위원회(위원장 이광교)가 전임 회장단과 선거관리위원회의 불투명한 회계 처리에 정면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한인사회 내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 28일 한인연합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인억 전 회장단과 선관위(위원장 박을구)의 불법적인 지출을 조목조목 지적한 인수위의 발표는 그간 묵인돼 왔던 한인단체들의 음성적 재정 운영 방식에 급브레이크를 거는 셈이어서 특히 충격이 크다.
지난 2월 구성된 이후 김인억 전 회장과 선관위의 불분명한 공금 관리 혐의와 관련해 조사를 벌이겠다고 별러왔던 인사위는 29일 한인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전 회장과 선관위가 코러스 축제와 회장 선거에서 불법적으로 예산을 집행했다고 볼 수 있는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본보 30일 A1면). 이 자리에서 이광교 위원장은 선관위가 허위로 만들었다며 3개의 식당 이름으로 발행된 영수증도 자료로 제시했다. 이 같은 인수위의 조사와 발표는 많은 한인단체들이 형식적인 보고만 하면 누구도 회계 관리를 문제 삼을 수 없었던 관례가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져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인수위 발표와 관련 김인억 전 회장은 즉각적인 반박을 피했다. 김 전 회장은 30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출장 중이어서 내용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뭐라 말 할 수 없다”며 기자회견을 따로 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을구 전 선관위원장과는 통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렇듯 논란의 핵심에 있는 두 사람의 해명을 듣지 않은 상황에서는 종합적인 판단이 유보될 수밖에 없으나 인수위가 증거로 제시한 영수증 등 일부 문제점들이 드러난 이번 사태를 보며 한인사회 인사들은 “한인단체들이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회계 관리 관행을 근절하고 근원적이고 제도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계기를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인단체들의 투명한 재정 관리 정착을 위해 우선 지적되는 것은 감시 기능 부재로 말미암는 임원들의 무책임하고 과도한 지출.
인수위 조사에 따르면 한인연합회 선관위는 11월15일 토요일 하루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1,224달러, 한 사람당 136달러를 썼다. 9명의 선관위원들이 회장 선거가 진행되는 한달여 기간 동안 39회에 걸쳐 사용한 식사대는 5,490달러였다. 정확한 보고라 해도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터무니없이 많은 돈이 사용된 것이다.
인수위는 가짜로 발급된 영수증들을 증거로 내놓고 있고 일부 위원들 스스로도 3-4회 정도 밖에 식사를 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어 도대체 수 천달러가 실제로 어디에 사용됐는지 선관위의 답이 궁금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각 단체들이 형식적으로 두고 있는 감사의 기능도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책임한 재정 집행과 불분명한 회계 보고는 감사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인수위는 김인억 전 회장이 작년 코러스 행사 결산 영수증 제출을 공문으로 요구받고도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김 전 회장의 입장은 “이미 회계 감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감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수위가 김 전 회장의 재정 보고에 큰 의혹을 품는 현실은 한인연합회 감사의 역할과 권한에 의문을 품게 된다.
인수위는 김 전 회장이 회계 감사를 거쳤다고 하지만 수입과 지출에 대한 기장 대조에 그치기 때문에 현장 확인 없이는 실제 집행 여부를 알 수 없다며 당시 장부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영천 한인연합회장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단지 인수위를 통해 전 회장단의 문제만 들춰내서는 안되고 보다 발전되고 성숙한 한인연합회를 만들기 위한 대안이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뜻있는 한인사회 인사들은 “불법과 부정으로 치부될 수 있는 나쁜 관행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인수위 조사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고치고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며 아픔과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물러서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한인들은 워싱턴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한인연합회의 공신력 회복은 어느 것보다 시급한 사안인데다 한인연합회가 먼저 제자리를 찾을 때 다른 한인단체에 파급되는 효과가 매우 긍정적일 것이라는 기대도 표명하고 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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