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떼가 궁중에 들어와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의 책상에 올라앉았다. …두꺼비 수만 마리가 나무꼭대기에 모였다. 백성들이 까닭 없이 달아나니, 누가 잡으러 오는 것 같았다…’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백제가 망하기 1년 전 왕조의 몰락을 알리기나 하는 것처럼 나타난 이상 징후들을 나열한 것이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나, 아니면 백제의 패망을 천명으로 인식시키기 위한 역사왜곡인가. 그 진상은 알 길이 없다.
‘무엇인가 징후가 엿보였다’-. 하여튼 한 왕조가, 전제주의 체제가 무너지면 흔히 나오는 이야기다.
현대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징후를 자연의 기이한 현상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독재권력 유지의 최후보루가 되는 군이나, 경찰의 행동이 예전 같지 않을 때 이를 그 한 징후로 보는 것이다.
군과 경찰은 체제수호세력의 첨병이다. 그런 그들의 충성심이 약해진다. 아니, 점차 반체제 동조세력화 되고 있다. 그럴 경우 그 체제의 몰락은 임박했다는 것이다.
그 한 예가 로마노프 왕조 몰락 시의 러시아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독재체제 붕괴 때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군이 등을 돌리면서 차우셰스쿠 일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와 흡사한 일이 북한에서도 일어나고 것이 아닌가’- 루벤 존슨이란 한 북한 관측통이 던진 질문이다. 단순한 희망적 관측이 아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포함한 최근 일련의 주요 연구소 보고서 내용들을 종합해 내린 결론이다.
계속되어온 식량위기는 북한군부 기득권층에 상당한 타격을 가해 군부의 김정일에 대한 충성은 예전 같지 않다. 식량위기는 김정일 일가의 통제력에 영구적인 약화를 초래했다. 이런 지적과 함께 김정일 체제가 요동치고 있다는 진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괴이한 방법으로 연명해온 게 김정일 체제다. 핵에 ‘올인’했다. 주민의 목숨은 해외의 식량원조에 기댄 채. 200만 가까운 아사자를 낸 90년대 중반이후 북한이 ‘선군’(先軍)이란 이름하에 줄곧 취해온 정책이다.
그 정책은 성공한 듯 보인다. 미사일을 쏘고 핵 실험을 해댄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중국이, 한국이, 미국이 식량 원조를 해 준 것이다. 벼랑 끝 외교라고 했나. 앵벌이 외교라고 했나. 그게 통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앵벌이 외교는 김정일 체제 몰락의 덫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오늘날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는 것은 김정일 체제가 아니다. 암시장이다. 대기근 이후 북한 주민의 80%가 음으로 양으로 암시장을 통해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다. 이 암시장을 더욱 활성화 시키고 있는 것이 외국의 식량원조다.
식량원조의 30%이상이 새나간다. 군이나, 실력자들이 중간에 가로채 팔아 현금을 챙기거나 다른 생필품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 빼돌리기는 그러나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판 시장경제의 비약적(?) 발전이다.
좌우간 돈만 있으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 막대한 양의 원조식량이 시장에 나돌고 있으니까. 문제는 돈이다. 그 돈을 추구하다보니 더욱더 발전한 게 시장경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김정일의 통제력이 현저히 약화됐다는 사실이다. 인민을 먹여 살리는 것은 ‘경애하는 수령’이 아닌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 시장 세력의 확산에서 북한의 권력집단은 심각한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강력한 시장규제 명령을 하달한 것. 문제는 그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찰이 장사꾼과 한 통속이 된다. 군부대가 중국으로부터 고물버스를 수입해 오히려 적극적으로 암시장 유통을 돕는다. 시장을 단속하라는 명령을 받은 그들이다. 이런 경찰과 군이 시장 세력에 동조해 돼 돈 벌이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물자 유통은 말할 것도 없다. 탈북 행렬도 돕는다. 돈만 주면. 군, 보안서원, 내무서원들이 저마다 축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앙으로부터의 질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체제 수호의 첨병 역할을 맡은 그들이 말이다. 무엇을 말하나. 김정일 체제의 내일이 없다는 것을 이 권력 수호세력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일과 그 측근들은 이 시장 세력의 인질로 잡혀있다고 볼 수 있다.” 내려지는 결론이다. 이 현상을 타파하라. 북한 권력 집단의 필사적 몸부림이 그동안 보여 온 일련의 강경드라이브다. 그 절정은 대포동 미사일을 쏴 올리는 거다.
주민을 굶겨 죽이면서 높이 쳐든 강성대국의 기치. 도무지 가당치도 않은 이 초현실적인 ‘넌센스 극’이야말로 체제붕괴를 알리는 결정적 징후가 아닐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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