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퍼슨, 루이지애나 매입 영토 확장
루즈벨트 경제정책, 현 정부의 모델
한국에서는 없는 대통령의 날을, 미국에서는 해마다 기념한다. 2월의 세 번째 월요일에는 ‘대통령의 날’을 기념하여 각급 공립학교와 관공서는 휴무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날’은 어떻게 유래했으며, 왜 이날을 기념하는가를 갓 이민 온 한인 학부모들을 위하여 설명해 보고자 한다.
대통령의 날은 본래 George Washington 대통령의 생일인 2월22일을 경축하기 위해 1880년 부터 District of Columbia에서 최초로 실시되었다가, 1885년부터는 최초의 연방 공휴일로서 기념하게 되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의 생일이 2월12일이므로 1976년부터 ‘President’s Day’로 개칭하여 오늘날까지 미국 역사상 모든 대통령의 생일을 한데 묶어 ‘대통령의 날’로 기념해 왔다.
미국에는 현재까지 44명의 대통령이 재임했었고, 35대 John F. Kennedy 대통령이 최초로 Irish계, 가톨릭계 대통령이었으며, 주지하다시피 현재의 오바마 대통령을 제외하면 모두가 백인, 신교 출신 남자였다. 미국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역대 대통령에 대해 2회에 걸쳐 간략하게 설명하려 한다.
George Washington 대통령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서, 1789~1797년 재임했으며 버지니아주 Mount Vernon(현 Washington 근교)의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버지니아주 의회를 거쳐 영국군에 대항한 미군 사령관이었고, 미망인과 결혼했었다.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행해진 제헌 대회를 주재했고, 이 대회로 미국 최초의 헌법이 비준되자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대통령으로서 의회의 입법 활동을 존중, 자신은 외교에만 전념했다.
Thomas Jefferson(1801~1809)은 제3대 대통령으로, 그 역시 버지니아주의 대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College of William & Mary를 거쳐 법률을 공부했으며, 33세에 미국 독립 선언문을 기초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1803년에 영국과의 전쟁으로 재정적으로 허덕이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부터, 단돈 1,500만달러에 루이지애나를 사들여 미국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퇴임 후 고향인 Monticello로 돌아가 University of Virginia를 설립했으며, 사람들은 그를 “Monticello의 현인”으로 불렀다.
Abraham Lincoln(1861~1865) 제16대 대통령은 주지하다시피 켄터키주의 개척자의 아들로 통나무집에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위고 가난과 배움에 굶주렸으나,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어 8년 동안의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을 거쳐 미국 대통령이 되었으며, 1863년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남북전쟁 중 전몰한 병사들을 위해 필라델피아 근교의 Gettysburg 국군묘지 헌정식에서 행한 연설에서 전사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새로이 태어나는 자유정부는 이 지구상에서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었다.
1862년 Land Grant(정부에서 땅을 하사한) 주립대학을 각 주에 설립하는 교육정책도 펼쳤다. 1865년 4월14일 DC의 Ford 극장에서 한 배우에 의해 저격당해 5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제25대 William McKinley는 오하아오주 출신으로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 1898년 미 의회에서 행한 기조연설을 바탕으로 연방의회는 Cuba의 해방과 독립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고, 스페인과의 100일 전쟁 후에, 미합중국 함대는 Cuba 근해에서 스페인 함대를 격파한데 이어, 필리핀, Puerto Rico, Guam도를 점령, 조차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1901년 재선에 당선된 후, 무정부주의자가 쏜 탄환에 맞아 작고했다.
제26대 Theodore ‘Teddy’ Roosevelt 대통령(1901~1909)은 Harvard 대학 출신으로, McKinley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부통령에서 1901년 약관의 나이인 43세에 미국 건국 이후 최연소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링컨 등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리 뉴욕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1884년 어머니와 아내가 같은 날 죽는 슬픔을 당했다. 뉴욕 주지사를 연임했다.
정부 주도의 경제활동을 주창했으며, 대서양과 태평양간의 지름길이 된 파나마 운하 건설을 지원했다. 노일전쟁의 중재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며, 일본인의 노동이민을 규제하기 위한 ‘신사 협정’(1908년-이 협정으로 1910년 한일합방으로 주권을 상실한 한국계의 노동이민도 저촉 받음)도 체결했다.
제28대 Woodrow Wilson 대통령(1913~ 1921)은 장로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 최초의 박사학위 소지자 대통령이었다. 대학교수 및 Princeton 대학의 총장을 역임했고,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고 이승만 박사의 스승이기도 했다. 뉴저지주 주지사를 역임한 후 1912년 대통령이 된 뒤 진보적인 개혁을 추진했으며, 세계 새 질서 확립에 힘썼고, 국제기구 결성을 주장했었다. 1917년 미국이 세계 1차 대전에 전격적으로 참가하는 결정을 내린 장본인으로, 미국을 세계의 지도국가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한 대통령이다.
제32대 Franklin D. Roosevelt(FDR) 대통령(1933~1945)은 뉴욕 주지사(1928~1932)를 거쳐 세계가 대공황의 늪에서 허덕이던 1933년에 대통령이 된 후, 1945년 4월 뇌출혈로 서거하기까지 대통령직에 4번씩이나 당선되었다.
취임 후 2개월 만에 1,500만명의 실업자가 생기고, 전국의 거의 모든 은행이 문을 닫았던 세계적인 대공황을 타개해 나가야 했다. 취임 후 100일 내에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마련,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 부유층에게는 보다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누진과세를 도입했고, 은행과 공공사업의 정부규제를 강화했으며, Tennessee Valley Authority 등을 통해 고용창출을 도모하고, 실업자를 위한 대폭적인 취업구제 정책을 폈다.
지금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들이 이 FDR의 정책들과 흡사한 점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클라라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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