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광으로 알려진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역시 야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카스트로는 쿠바가 이번 WBC에서 4강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우승후보인 한국과 일본이 속한 서부조에 쿠바를 밀어 넣었기 때문이라고 불평하면서 우승팀이 서부조에서 나올 것이라고 했는데 그의 전망대로 결승서 한국과 일본이 맞붙어 야구사에 남을 명승부를 펼쳤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한국팀은 한국인들에게는 드높은 자부심을, 세계 야구계에는 깊은 인상을 남기며 ‘위대한 도전’을 마무리했다. 사실 한국은 전력상 이번 대회 4강도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던 팀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한국선수들은 펄펄 날았다.
한국팀 선전의 원동력은 여러 가지다. 믿음의 리더십을 보여줘 ‘김믿음 감독’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과 다른 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끈끈한 팀웍,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얻은 자신감 등 많은 요인들이 뒷받침 됐다. 하지만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에서 선수개개인의 역량과 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리더십이 뛰어나고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도 성적에는 한계가 있다. 승리의 기본은 선수의 실력인 것이다.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데 있어 타고난 재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땀이다. 신경과학자인 다니엘 레비틴은 오랜 연구를 거쳐 “작곡가, 야구선수, 소설가, 피아니스트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경지에 이르려면 1만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중적인 글쓰기로 베스트셀러를 잇달아 내놓고 있는 사회학자 말콤 글래드웰은 이런 결론에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비슷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이것을 얼마나 꽃피우느냐는 결국 흘린 땀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지난 15일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를 중계한 ESPN은 경기 도중 한국팀 연락관과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에서 연락관은 “한국선수들이 메이저리거들보다 두배는 연습을 더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팀의 한 관계자는 “두배 정도가 아니라 다섯배는 더 연습할 것”이라고 들려줬다. 이 관계자의 지적처럼 한국선수들은 예외 없이 연습벌레들이다.
한국선수들이 연습벌레가 될 수밖에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 한국 프로선수들의 연봉계약은 일년 단위로 이뤄진다. 일년 열심히 일해 다음 한해 먹고 사는 구조이다.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 되다 보니 매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성적은 곧바로 다음해 연봉액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꾀를 부릴만한 여유가 없다.
반면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다년 계약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액수가 보장된 계약들이다. 기름기 줄줄 흐르는 다년 계약서에 서명하고 난 후 게으름이 고개를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몇 년 적당히 뛰다 계약 갱신을 앞두고 바짝 뛰어 다시 계약하면 된다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 거액의 다년 계약을 맺은 메이저리거의 상당수가 ‘먹튀’로 전락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대회서 한국에 무릎을 꿇은 팀들의 연봉 총액은 한국선수들의 수십배에 달한다. 이런 연봉은 시장상황과 규모에 따른 거품이지 실력 차이는 아니다. 한해 수백만달러 이상 받는 메이저리거들이라 해도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일년 내내 땀 흘리는 상대를 당해내기는 힘들다는 것을 한국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여실히 보여줬다. 이것이 헝그리 정신의 힘이다.
이렇다 할 야구 인프라도 없고 선수층도 엷은 한국이 WBC 준우승의 성과를 거둔 것은 우연도, 행운도 아니다. 한국선수들이 흘려 온 땀을 생각하면 이것은 필연이다.
한국의 프로선수들은 항상 분발하지 않으면 곧바로 도태된다. 이런 분발심이 집약돼 나타난 결과가 이번의 준우승이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아주 열악한 프로환경이 역설적으로 한국팀의 강한 전력을 만들어 냈다.
원년대회 4강에 이어 이번에 준우승을 했으니 다음 대회에서는 우승이다. ‘위대한 도전’이 ‘위대한 성공’으로 결실 맺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든 분발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한국 야구가 가진 힘의 원천이다. 그러고 보면 ‘1만시간의 법칙’은 헝그리 정신을 그럴듯하게 바꾼 학술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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