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집에 다니러 온 딸이 친구와 전화를 하는 것 같다. 나는 한국 비디오를 보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옆에 와서 딸은 장기에 훈수를 두듯 5분마다 조금 볼만하면 드라마를 스톱시키고 질문을 했다. “엄마, 황당하다가 뭐지요? 뾰로통 하다는요? 귀부인은 어떤 부인인가요?”처음에는 설명을 열심히 해주며 한국말 한마디라도 더 배우려는 것이 기특했는데 그렇게 대답하다보니 흥미진진 스토리는 사라진지 오래고, 조금 짜증이 나 계속 틀면서 조금씩 설명해갔다. 30분쯤 보다가 오늘 드라마 공부는 여기서 끝내고, 그래도 한국말 열심히 배우려는 마음이 기특해 공부를 가르쳤다. 그 다음날도 드라마와 해설은 계속되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 두 아이들은 어렸을 때, 그때만 해도 한국 베이비시터를 구할 수 없었고, 그래서 미국 베이비시터와 하루 종일을 지내고 밤에 잠깐 우리 얼굴 보는 것이 고작이던 시대였다. 그러다 처음으로 교회에서 한국 학교를 토요일에 한다고 하던 그날부터 거의 8년 정도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학교로 끌고 다녔다. 그래도 딸은 한국어를 재미있어 하는 편이었으나, 아들은 누나가 가자고하니 할 수 없이 따라갔고, 토요일만 되면 항상 같은 꾀병인 배와 머리 아프고, 토할 것 같다는 둥 별로 재미없어 하며 싫어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
어른한테는 존댓말을 써야하는데, 잘 모르겠으면 그냥 말끝에다 ‘요’자를 붙이라고 했다. “나도 따라 갈래~요” 하면 그 ‘요’자는 잊어버리고 있다가 보통 일분쯤 뒤에 나오기도 했다.
의과대학 본과에서 2년을 마치고 1년을 휴학하고 한국에 가서 한국어를 더 배우고 돌아와 본과를 마친 딸, 그 애 이야기로는 자기가 한국말을 제대로 배워야 자기 아이들한테도 한국말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고, 의사가 되어서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 고집 누가 말려. 아이고, 한국 연세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딸은 서울 대학원생 5명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일주일에 3번씩 학교 끝난 후 영어 과외를 했다.
그래도 여기서 한국학교를 다닌 덕분에 시험을 쳐서 조금 높은 반에 들어갔다는 딸에게 걱정이 되어 이것저것 얘기를 하다 “참 너 거기 외할머니한테 절대 말대꾸 하지 말고 덤벼들지도 말라”고 했더니 “엄마, 내가 독안에 든 쥐인데 고양이를 물겠어요?”라고 대답했다. 황당해 놀라서 물어보니 학교에서 큐카드를 만들어 요새는 격언을 배운다고 해서 함께 웃었다.
딸이 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하면서도 영어 많이 못하는 한국 환자가 오면, 그 서투른 한국말로라도 한국말을 해보고 싶은지 부지런히 나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Surgery(수술), Incision(수술자국, 약간 쨈), Antibiotic(항생제)가 뭐지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어느 국민보다 노력을 더 많이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 그런 피가 자기 몸에 흐른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한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고 또 자랑스럽다고 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사람이 급한 상황에 처하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간다고 하던가.
지금은 제법 한국말을 하는 아들이 고등학교 때 한국 여름학교에 갔었다. 같이 한국말을 배우는 친구들을 만나서 롯데 월드서부터 몇 군데를 구경간다고 얘기했다. 다녀와서 어떻게 말이 잘 통했냐고 물으며 화장실은 잘 찾았냐고 물었더니, 아들 왈 잘 찾았는데 ‘화장실’을 잊어버려 “오줌방 어디 있어요?” 했더니 킥킥 웃으면서 가르쳐 주더라고 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하나 사와서 “이것 빛안경 얼마에요?”라고 하니까 친구들도 막 웃더라고, 그런 줄 알았으면 한국말을 더 열심히 잘 배워둘 걸 하면서 후회했다.
택시를 어떻게 잡아서 전화하고 금방 왔느냐고 물어보았더니, 택시 기다리는 줄은 길고 어두워져서 가까이 서있는 순경에게 “저 미국에서 왔어요.우리어머니가 많이 기다려요, 택시오” 라고 했더니 “여기 미국에서 혼자 온 학생이 있으니 편리 좀 봐 줍시다”라고 해서 빨리 집에 왔다고 했다.
요즘은 로펌에서 변호사를 뽑아도 영어만 하는 사람보다 한 가지 말이라도 더 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문득 자기들이 한국말을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에 정말로 감사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태어난 2세들이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지만, 그들이 어떤 분야의 직업에 종사하던지,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든든한 큰 자산이다. 또한 그들은 오랫동안 부모님의 노력에 감사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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