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온도·미세한 진동에도 민감
나무 상자에 눕혀 서늘한 곳 보관
지금 세상이 당신을 알아주지 않아 빛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저 지하 셀러에서 수십 년간을 침묵 속에 버티고 누워 있는 한 병의 와인을 생각해 보라. 당신이 현재 만들어가고 있는 세월의 나이테는 오히려 화려한 문양으로 변모할 것이다. 대기만성형의 와인이 그렇듯이 어떤 사람은 오랜 숙성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와인은 본인의 기질(포도품종과 빈티지)과 양조자의 기술만큼 중요한 것이 숙성과 보관 조건이기 때문이다. 즉 적합한 환경이 제공되어야 오래도록 좋은 맛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1992년 싱가포르 근처 바다에서 침몰한 화물선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 화물선은 1892년 베트남으로 항해하던 중 침몰된 것이었는데, 그 사실뿐이었다면 큰 화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침몰된 화물선이 화제가 된 것은 바로 와인 때문이었다.
인양해 보니 그 안에서 잘 숙성된 보르도 생줄리앙의 샤또 그리오 라로즈가 나왔던 것. 무려 120년이나 지난 이 와인은 유물로서의 가치는 있다고 해도 과연 맛이 괜찮았을까. 놀랍게도 100년이 훌쩍 넘은 이 와인은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극찬할 정도로, 훌륭한 와인의 맛을 전혀 잃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이 120년 동안 침묵한 와인의 보존된 맛은 아마도 와인의 보관조건을 말해 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먼저 깊은 바다 속은 빛이 없고 온도가 적당히 낮으며 변화 또한 거의 없을 뿐더러, 진동 또한 없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와인을 보관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바다 속에 침묵했던 와인이 튼튼한 구조를 가져 오랜 숙성이 가능한 보르도 생줄리앙의 특등급 와인이었기에 가능한 얘기다. 이 와인은 태닌이나 산도, 당분 등이 아주 탄탄하게 짜여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더 원숙해졌던 것이다.
반면 훌륭한 와인일지라도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금방 노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보관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와인은 실로 살아 있는 유기체여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섬세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이 산지를 떠나 여행을 한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종종 사람들은 여행 중에 생산지에서 직접 마셨던 와인 맛을 못 잊어 집에 돌아와서도 그 와인을 찾기도 하는데, 이 때 그 맛이 다르다고 하는 경우는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빛과 온도 그리고 미세한 진동에도 와인은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수입 와인들이 높은 원가로 인해 대부분은 온도조절 장치가 없는 선박을 통해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와인들은 뜨거운 열도를 지나왔을 수도 있고, 때로는 한겨울 어느 항구에서 방치되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들어온 와인들은 매우 피곤한 상태가 되는데, 와인이 피곤하다는 건 현재로선 품질에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오랫동안 수명을 연장하기에는 결국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입 와인 100%의 한국 현실에서는 그나마 단골매장을 정해 놓고 수입, 시판되자마자 바로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때로는 좋은 와인일수록 빨리 마시는 것이 더 좋다는 아이러니가 생기기도 한다.
가정에서 와인을 보관해야 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와인은 나무 박스나 와인 랙에 눕혀서 보관한다. 종이 상자는 때로 마분지 향이 배어들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적당하지 않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상자에 담아 둔 와인은 온도 변화가 가급적 없는 서늘한 곳, 예를 들면 지하실이나 주택의 계단 밑 같은 곳에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가 대부분의 주거형태인 우리나라의 경우, 이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와인을 보관하기 위해 부담은 좀 있지만 와인 전용 냉장고를 마련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는 김치를 맛있게 먹기 위해 김치 냉장고를 구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와인 냉장고는 일반 냉장고처럼 진동을 일으킬 수 있는 모터가 없어 와인의 품질을 그대로 유지시켜 준다.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가이드’
(김기재 지음·넥서스 Book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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