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서있는 딱한 우리의 벚꽃나무! 점령군 손에 이름마저 속아서 끌려간 나무 정신대 제주산 왕벚꽃나무! 이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언제 어떻게 끌려갔는지 한마디도 토설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며, 그저 아름다운 자태만을 뽐내며 오늘도 피어나고 있다. 말없이 서있는 저 벚꽃나무의 내력을 알아보아야겠다.
고 칼 훼리스 밀러는 현재 워싱턴 조수(潮水) 연못에 만발하는 벚나무는 한국이 원산인 벚나무의 변종이며 일본 원산 벚나무가 아니라고 확신했다.(고 칼 훼리스 밀러의 한국명은 민병갈이며 2002년 81세로 작고해 천리포 수목원에 묻힌 분으로 천리포 수목원을 한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식물원으로 발전시킨 분이다.) 그는 “오늘날 일본 원산으로 알려져 세계에 널리 유통되고 있는 요시노 벚나무가 사실은 제주도의 벚나무가 일본으로 가서 퍼뜨려진 것이다”고 했다.
진해 해군기지가 있는 곳에 5만 그루의 벚꽃나무가 늘어서 있다. 이 벚나무들은 일본의 한국동포들이 일본 벚나무 원종이라며 선물한 나무다. 또 진해 장복산에 심어 진 4만 그루의 벚나무도 마찬가지라 한다.
1598년 이순신 장군께서 왜적을 대패시킨 역사적인 도시 진해에서는 매년 청소년들이 이순신 장군으로 분장하고 기마행진하며 진해군항제를 올리는 도시이다. 해방 후 한 때 진해 시민들이 이 나무들이 일본 요시노 벚나무라는 사실이 싫어 해군기지 주변의 벚나무들을 베어버리기도 했었다.
원래 조선의 해군기지였던 이곳이 일제 식민통치 때에는 일본의 해군기지가 되었고, 해방 후(미 군정이 끝난 1948년)에는 다시 대한민국 해군기지로 되돌아왔는데 일본 해군기지였을 당시 일본은 이곳에 1만여 그루의 벚나무를 심어놓았다고 한다.
이제 와서 제주도 원산 왕벚나무의 몇 대가 될지 모르는 후손인 벚나무를 일본산 벚나무로 선사받고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벚나무 선물은 1912년 도쿄의 아라가와 강변의 벚나무를 도쿄 시장이 워싱턴에 선물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 최초의 선물이었던 벚나무는 벌레 먹어 다 죽었고, 몇 년 후 일본은 새 품종 벚나무를 다시 선물했다. 이때의 벚나무가 곧 제주도에서 캐온 것으로 미국 풍토에도 잘 견뎌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들 벚나무만 뿌리가 뒤바뀐 채 꽃피우고 있는 것일까? 일본의 역사, 문화 모두가 그와 같다는 것을 그들도, 또 우리도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쯤이면 자각할 수 있을까.
인간과 나무의 가장 격심했던 혼합은 1500여 년 전 부여, 가야, 백제인들로 이루어진 기마족 지배계층이 왜 땅으로 가서 그곳 원주민들을 제압했던 때이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나오는 초기 일왕 25명의 혈통을 추적하여 그들이 순수한 한국혈통의 한국인들임을 밝혀냈다.(이상은 존 카터 코벨 박사의 ‘부여기마족과 왜’에서 발췌, 간접 인용하였다.)
일본 도처에 한국계의 인물을 주신으로 받들어 제사지내는 신사가 많았음은 앞서 밝힌 바 있듯이 우리 고대사의 소머리(牛頭)대왕을 받드는 오사카 히라가다 신사로부터 소머리 사찰(牛頭寺), 산 이름 소머리산(牛頭山) 등은 물론 일본 대궐에서 제사를 올리며 받들던 백제인을 뜻하는 한신(韓神) 2좌와 가야국과 신라인을 뜻하는 원신(園神) 1좌가(10세기 일본법령집 ‘延喜式’ 기록) 있었으며, 사실 일본의 신사는 천손족 출신인 한국신과 일본신 두 종류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지금 한인계의 이러한 유적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서 지워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과거, 감추고 없애며 억지를 부리지 않을 수 없는 과거를 지우고 있다는 것인데, 그러나 과연 지운다고 지워질 것이며 없앤다고 없어질 것인가,
단군조선 제3세 가륵왕검(기원앞 2182~2138) 10년, 즉 기원앞 2173년, 두지주(頭只州) 예읍(濊邑)이 반란을 일으키므로 여수기(餘守己)가 그 우두머리 소시모리(素尸毛犁)의 목을 베었다. 이로부터 그 땅을 ‘소시모리’ 라 하였고, 지금은 음이 변하여 소머리(牛首國)가 되었다. 그 후손에 협야노라는 자가 있었는데 바다로 도망하여 세 섬(三島)을 점령하고 참람하게도 왕이라 하였다는 그들, 구이(九夷) 중 아홉 번째에 기술된 왜이(倭夷)가 곧 이들의 선조가 아닌가.
마치 일본산 벚꽃나무로 위장되어 서있는 제주산 왕벚꽃나무처럼 그 진면목을 드러내 지 못하고, 그들은 그들의 위장된 역사 속으로 점점 더 깊게 빠져들고 있다.
그럼에도 흐드러지게 핀 저 벚꽃무리들을 누가 아름답지 않다고 하겠는가. 어디에서 누구의 이름으로 피어날지라도 아름답기만 한 저 벚꽂나무, 한갓 꽃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 마음을 달래나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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