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5세짜리 아이가 왔는데 검사를 해보니 우울증 증상을 보였어요”
평소 친분이 있는 임상심리학자와 며칠 전 모처럼 만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먹고 사는 얘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가 아이들로 옮겨졌다.
“그 나이에도 우울증이 있나요?”
“나타나는 증상이 어른과 달라서 잘 발견되지 않을 뿐이지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요즘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모든 것이 자극적으로 변하는 하이텍 문화가 가져온 또 다른 현대병이 아닌가 싶네요”
그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예를 들면 웬만한 가정에는 컴퓨터 게임기가 한 대씩은 있잖아요. 한 번 자세히 보세요. 강렬한 색체와 자극적인 화면, 그리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그 세계는 한 번 빠지면 특히 어린 아이들은 헤어 나오기 힘들어요. ADHD 환자들은 산만한 행동을 보인다고들 알고 있지만, 이런 게임에 빠지면 24시간을 매달리는 경우도 있어요”
이 심리학자에 따르면 요즘 자녀들의 정신건강 문제로 상담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단다. 그나마 병원 또는 전문가를 찾는 것은 조기 치료 가능성이 그 만큼 높아져 다행이지만, 문제는 적지 않은 부모들이 이런 증상에 대해 거의 무지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면 의심보다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별난 말썽꾸러기’ 정도로만 인식하거나, 심지어 자녀의 행동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매로 다스리려는 일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심리학자는 아이들의 정신건강은 유전적인 요소도 있을 수 있고, 뇌 활동의 장애로 발생할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어린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말로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과연 아이들이 밝고 건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문명의 발달은 오히려 아이들을 컴퓨터의 노예로 만들어가고 있다. 또 지나친 경쟁사회는 아이들에게 똑같은 목표와 행동을 강요하고 있다.
부모들은 사랑으로 아이를 키운다고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데이케어 또는 애프터 스쿨에서 부모가 찾아올 때까지 떨어져 지낸다. 집에 가도 마찬가지다. 저녁을 만들어 먹고 나면, 가족들은 하루를 정리할 시간도 없이 잠자리에 들기 바쁘다. 어쩌면 이런 것이 지금 우리의 평범한 일상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형 게임기가 아니다. 부모가 항상 옆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안정감이다. 부모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것 자체만으로 자녀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나아가 논리력, 판단력, 사고력, 발표력을 키울 수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부모가 함께 놀아주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단 10분이라도 책을 읽어주거나, 답답한 집안에서 벗어나 자연을 찾아 신선한 바람을 쐬며 흙을 만져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루, 아니면 반나절이라도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은 아이들 정신건강에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한다.
자연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널려 있다.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놀아보자. 웃고 뛰면서 자녀는 건강하게 자란다.
그러고 보니 이 번 주말부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 펼쳐진다.
시간이 된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장을 찾아 수만 관중 속에서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쳐보면 어떨까. 현장 체험만큼 ‘산교육’은 없다. 여건이 안 된다면 집에서 먹거리를 준비해 놓고 중계방송을 보며 가족이 응원을 하는 것도 좋다.
아마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도 느끼고, 자신이 ‘코리안 아메리칸’이란 뿌리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경제가 말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원, 감봉, 파산이란 단어를 듣고 지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이니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다고 아이들 문제에 소홀할 수도 없다.
내 아이의 정신건강은 어느 정도일까. 시간만 나면 컴퓨터 게임에 매달려 버튼을 정신없이 눌러대는 자녀의 모습에 대해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엄마, 아빠가 귀찮아 할 정도로 말을 걸어오고, 항상 밝은 아이의 모습이 훨씬 더 귀엽지 않은가.
황성락 /특집 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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