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이 이제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가 됐다고 말들을 한다. 경제성장과 동시에 빈부의 격차,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온갖 사회적 문제를 가져왔다. 특히 농촌 기피 현상으로 농촌 총각들의 결혼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웃을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선 기구가 바로 국제결혼알선업체다. 지금은 좀 뜸하긴 하지만 ‘캄보디아 결혼 800만원’, ‘월남 결혼 900만원’ 같은 선전 현수막이 고속도로변에 걸려있는가 하면, 기차나 전철역에는 쉽게 국제결혼을 주선한다는 업체들의 선전지들이 보인다. 선전문구 하나를 예로 들면 “인력은 국력이다. 결혼하고 출산해야 효도하고 애국한다”며 효도와 애국심에 호소하고 있다. 가히 천재적 두뇌에서 나온 기발한 착상이다.
농촌 노총각들은 주로 동남아의 빈곤국 출신 신부들과 현장에서 맞선을 보고 벼락치기 결혼을 한다. 동남아국가들 신부 중에서 월남 여성들이 수만 명에 달해 다문화 가정 중에서 3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국의 남성과 결혼을 해서라도 가난을 모면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희망을 안고 낯선 땅을 밟는 동남아 신부들은 대개가 10~30년 연상의 농촌 노총각에게 시집을 온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희망과 정반대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도 작은 일이 아니지만, 사기결혼과 남편의 폭력은 자칫하다간 국제적 분쟁의 씨앗으로 번질 수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고들 한다.
몇 달 전 서울의 매체들이 ‘뚜엣’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월남 신부의 기막힌 사연을 일제히 보도해서 안타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고향인 월남의 시골 움막집에서 찢어지게도 가난하게 살던 뚜엣은 20년 연상의 한국 농촌 총각과 벼락치기 결혼을 했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돼 정신질환을 가진 남편은 병원에 입원하고 거동마저 불편한 시아버지 밑에서 고된 농촌생활을 견디다 못해 시집온 지 반년 만에 독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해 행복을 찾으려던 뚜엣의 소박한 꿈, 바로 그것이 끝내 전신마비의 흉측한 불구자로 끝날 줄 아무도 몰랐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불구의 몸으로 하노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뚜엣을 붙잡고 가족과 친척들이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자 삽시간에 공항대합실이 눈물의 바다를 이뤘다고 한다. 한편, 이 기구한 월남 여인의 비극은 국제적 뉴스로 전 세계에 타전됐다니 한국의 위신과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꽃봉오리 ‘뚜엣’이 한번 펴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버린 지 한 달도 못돼서 이번에는 ‘씨받이’로 화제를 모은 또 다른 월남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월남 신부 ‘뚜하’(26세, 가명)는 거의 30년 연상의 이혼남과 결혼을 해서 딸 둘을 낳았다. 애들은 세상에 나오자말자 곧바로 전처에게 보내져 길러졌다. 둘째딸을 낳은 지 열흘 만에 뚜하는 이혼을 당했고, 남편은 전처와 재결합을 했다. 딸들을 뺏긴 것도 모자라 이혼까지 당한 뚜하는 전남편을 상대로 법원에 ‘양육자 변경 심판 청구’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판사는 “현재의 상황을 바꾸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청구를 기각함으로써 전남편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혈통을 이어준다면 선량한 여자를 ‘씨받이 도구’로 사용해도 된다는 면허증이 정부에서 발부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바꿔 생각도 해볼 필요가 있다. 만일 ‘뚜하’가 한국여성이었다면 어떤 판결이 났을까? 만일 한국여인이 외국에 시집가서 ‘출산도구’로 사용된 후 자식도 뺏기고 이혼을 당해 쫓겨났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당연히 분개할 것이고 규탄할 것이다.
두 월남 여인이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돈으로 평가되고 인종 편견에 의해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았다는 각도에서도 충분히 생각해볼 사안이다. 어머니의 자식사랑은 어느 민족이건 마찬가지다. 이처럼 잔인하게 모성애를 짓밟는 반인륜적, 반인권적, 반도덕적 행위가 정부의 비호를 받으며 버젓이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다니 믿어지질 않는다. 월남전에 참전한 국군과 파월 기술자들이 씨만 뿌리고 달아나 고아 아닌 고아로 월남에 남은 우리의 핏줄이 줄잡아 수만 명에 달한다니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순결한 월남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써먹지 않았다면 마땅히 자신이 뿌린 씨앗을 거뒀어야 하거늘, 월남에 두고 온 자식들과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와의 상봉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우리가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이 결코 자랑꺼리가 못 된다는 각도에서도 버려진 우리의 핏줄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함은 당연하다 하겠다. 더구나 월남은 중국 다음으로 많은 우리의 투자지역이다.
월남은 강대국을 차례로 몰아내고 민족통일을 이룬 나라다. 그래서 이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오랜 전쟁의 폐허 위에 건설의 망치소리가 지금도 우렁차게 들린다. 우리는 통일된 월남에서 어떤 교훈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못산다고 깔보거나 비웃는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민족인 우리는 오늘도 휴전선을 끼고 동족간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지 않은가. 이를 보고 남들이 비웃고 조소하는 것도 모른 채, 사기결혼에 걸려든 죄 없는 월남 여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다니… 이 가련한 여인들의 가슴속에는 배신감과 분노가 용솟음처럼 분출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얼마나 냉정한 사회, 가혹한 정부를 원망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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