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습관의 동물이다. 지구상의 수많은 인종이 천양지판으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런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디든 그곳 생활에 익숙해지면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맨 처음 미국에 오면 모든 것이 낯설지만 여기 오래 살다 한국에 돌아가 보면 오히려 한국이 딴 나라 같은 느낌이 든다.
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소위 ‘직선적 사고방식’(linear thinking)이다. 그저께가 어제와 별 차이가 없고 어제가 오늘과 다르지 않으면 내일도 오늘과 비슷하겠거니 하는 생각 말이다. 이는 비행기를 자동 항법 장치에 맡겨놓은 조종사처럼 사는 것을 편하게 해주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재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직선적 사고방식의 위험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경기 사이클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작년 경기가 좋았고 올해도 좋으면 내년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호황이 한해 두해가 아니고 5년, 10년이 계속되면 이제는 불황은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주장까지 나오게 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나오는 순간 호황 사이클은 끝나고 불황이 시작된다. 장기 호황으로 인한 방만한 투자와 비효율, 위험에 대한 무감각 등이 바로 불황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경기 순환은 단순한 원주 위의 이동이 아니다. 좋아질 때나 나빠질 때나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가속적으로 움직인다. 어떤 이유로든 경기가 나빠져 기업의 수입이 줄면 회사는 직원 수를 줄이거나 감봉을 통해 경비를 줄이려 한다. 일자리를 잃거나 월급이 깎인 직원들은 지출을 줄여 살아남으려 하고 이렇게 줄어든 소비는 기업의 수입을 더 줄이고 이는 다시 추가 감원과 감봉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킨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영난에 직면한 기업들은 정부에게 관세 장벽을 쳐 자국 산업을 보호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면서 타국 기업의 불공정 관행을 고발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찾아보면 문제없는 나라나 기업은 없다. 대량 실업이 발생하면서 유권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일시적인’ 관세를 매긴다.
수많은 세계 여러 나라 중 한나라만 이런 조치를 취해도 다른 나라들은 보복 관세를 부과하라는 압력을 받게 되며 세계는 무역 전쟁의 악몽에 빠져든다. 교역량은 급속도로 줄어들며 세계 경제는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다.
경기가 바닥에 도달하면 이와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영업이 호전되기 시작한 기업들은 일자리를 늘리고 봉급을 올리며 호주머니가 넉넉해진 직원들은 지출을 늘린다. 기업 이익은 늘어나고 관세 장벽은 철폐되며 교역량이 증가한다. 세계 경제는 호시절을 맞게 되며 사이클은 다시 원위치에서 돌게 된다.
경기가 바닥에 도달했는가를 제일 먼저 보여주는 것이 주식시장이다. 매일 장이 서 수시로 주가가 오르내리는 증시만큼 그날그날 투자가들의 심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현재 바닥을 기고 있는 미국 경기는 1년 반 전 다우존스 산업 지수가 곤두박질치면서 이미 예고된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을 비롯 70년대 장기 불황 때도 주가는 경기보다 일찍 내려갔다 경기가 회복되기 전 먼저 올라섰다. 이번 불황도 예외가 아니라고 봐도 거의 틀림없다.
문제는 이미 최고치에서 절반 이상 떨어진 다우 지수가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며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가가 정점을 달릴 때 쏟아져 나오던 장밋빛 전망은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암울한 관측만이 지면을 덮고 있다. 지금 주식 전문가 중 올해 증시를 낙관하는 사람은 3%에 불과하다. 바닥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증거다. 팔 사람은 이미 거의 팔았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황 때 과대평가 된 주식이 한없이 더 과대평가 됐던 것처럼 과소평가 된 주식도 얼마든지 더 과소평가 될 수 있다.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투자가 중의 한 명인 워런 버핏은 투자시기를 점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저점을 모른다면 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 분명한 것은 모든 불황은 끝나며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밝은 해가 뜰 것을 믿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것 이외의 방도는 없다.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