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보이 문화는
미국의 대표적 상징.
광대한 대평원에서 야생 동물같이 자연번식을 해가며 목초로 사는 거칠은 소떼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악조건에 당면하더라도 초연이 도전해서 이겨 나가는 카우보이들 밖에 없었다. 카우보이를 캘리포니아와 중부 대평원 지대에서는 Vaquero라고도 하였다.
스페인어로써 말을 타고 소를 몰고 다니는 목동이라는 뜻이다. Texas와 인근 지역에서는 Cowpunchers라고 하였는데 점차 카우보이라는 말로 표준화 되었다.
스페인을 위시해서 영국, 기타 여러 유럽국가의 목동의 풍속 습관과, 미국 원주민의 문화가 섞여서 형성된 문화가 바로 카우보이 문화로써 미국 초기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상징 이기도 하다. 강한 독립성, 공정성, 성실성, 담력 등 카우보이들이 감당하던 일을 되새겨보면 쉽게 납득이 간다.
방목(open range)의 단위는 수만 마리였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사육하는 소를 일일이 돌보지를 못하였고, 가을철에 한번 정도씩 잘 훈련된 말을 탄 카우보이 들이 말과 사냥개 등을 동원해서 기술적으로 전 지역을 포위하고 방목중인 소를 한 고장으로 모는 작업을 하였다. 이 소몰이 작업을 Roundup이라고 한다. 일정한 자리에 집결시킨 다음 당장 팔아 넘길 수 있는 소를 선별해내고, 일부 새로 생긴 소에는 그 목장의 화인(火印)을 찍어서 나머지와 같이 다시 방치를 하곤 하였다.
일단 팔 수 있을만큼 성장한 소를 소 시장까지 끌고 가야 했는데, 한국의 옛날 소 매매모양 자기가 기른 소를 장날 소 시장에 한, 두 마리 끌고 가서 거래를 하고는 막걸리 한잔을 거나하게 걸치고 돌아서는 식의 정서적 행사는 아니었다. 못해도 천 마리가 넘는 소떼를 몰고 수일간에 걸쳐 수 백마일 떨어져있는 철도역 인근에 몰고 가서 거기에 설치되어 있는 소시장 울타리에 몰아 넣고 흥정을 해서 팔아 넘기고 돌아오는 일이었다.
소를 이렇게 떼로 몰고 이동하는 일을 herding 이라고 하며 “떼”를 herd라고 한다. 미국 중부와 서남부의 초 대규모 목장에서 카우보이 10여명 또는 그 이상이 소떼와 같이 하는 대이동을 소몰이(Cattle Drive)라고 한다.
당시 대륙횡단 철도는 중부를 관통하게 되어 있었고 남부에 까지 미치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Texas와 인근 지역의 목장에서는 캔사스주와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의 철도역까지 소몰이를 하여야 했었다.
길의 상태도 변변치 않고 소의 마리 수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소를 일일이 줄로 매어 끌고 가지는 못하고, 대신 소를 떼를 짓게 해 그 떼를 싸우다 싶이 몰고 가는 일이었다. 경우마다 많이 다르지만 당시 남부 목장 업의 중심지였던 서남부 텍사스에서 캔사스주의 아빌렌(Abilene)까지의 소몰이가 전형적인 형태였는데 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Cattle Drive중에 소들은 잘 먹지도 못하고 과로를 하게 됨으로 중량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어 하루에 15마일 이상은 더 진행을 못하였다고 한다. 15마일을 진행하면서 중간중간에 목초지대를 찾아서 목초를 뜯어먹게 하여야 했다. 물도 먹여야 했기 때문에 수원지를 찾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텍사스목장에서 캔사스까지의 거리가 약 1,000마일이었으니 가히 2개월 정도의 일정은 각오를 하여야 했다는 것이다.
통상 한번에 3,000마리를 몰고 갔으며 최소 10명의 카우보이가 동원됐다. 카우보이 한 사람에게 배당된 말은 보통 세 마리였으며 여분으로 달고 다니던 두 마리는 타지 않는 동안에는 쉬면서 에너지축척을 하게 하였고, 때로는 소 몰이에 한몫을 하게 했다.
Cattle Drive중에 다른 목장의 Cattle Drive 일행을 만날 경우, 소는 다른 쪽 소떼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삽시간에 Herding 의 질서가 무너지고 난장판이 되곤 하였다. 서부영화에서 잘 나오는 광경이다. 이들을 떼어 놓고 난 다음에 상대 쪽에서 자기네 소떼에 섞인 이쪽의 소를 순순히 돌려주지 안으면 무력충돌까지 각오하여야 했다. 때로는 진행 중에 소 도족단(盜族團)이 달겨 들어 소를 무리로 몰고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때 역시 실력으로 대하는 길밖에 없었던 것이다. 카우보이 세계는 육혈포(六穴砲=권총)와 장총이 지배하는 세계였던 것이다.
미국인들은 식민지시대부터 쇠고기보다는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선호했는데 남북전쟁(1861-1865)이후 공급이 딸려서 쇠고기로 전환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 목장이 급증하여 방목은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었다. 1880년 초에 철조망이 발명되어 실용화 됨으로 각 목장에서는 자기네 토지와 정부와의 계약으로 얻은 토지 등 일정 구간에 철조망을 치고 목초보호와 소의 보호를 꾀하게 되어 방목제도는 자태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철도가 남부에 까지 광범위하게 확장 되어 Cattle Drive 도 근거리화되고 카우보이들의 옛모습은 차차 보기 어려워 졌다.
목초로 사육한 소는 기름 끼가 없고 삐삐 마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목초사육목장(牧草飼育牧場)에서는 관례상 소를 축산농가에 팔아 넘겨서 거기서 곡식 사료로 비대하게 만들게 하였다. 목초로 기른 소를 피더 캐틀(feeder cattle)이라고 한다. Feeder란 양식을 먹인다는 뜻이다. 이 feeder cattle을 사들이는 농장(목장)을 캐틀 파머(Cattle Farmer) 또는 캐틀 피더(Cattle Feeder)라고 한다. 5번 프리웨이 Coalinga 의 목장은 바로 이 Cattle Farmer(Cattle Feeder)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