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그린스펀은 코네티컷 대학의 심리학 교수다. 특히 그는 왜 사람들이 남의 말에 쉬 속아 넘어 가는지 연구하는 것을 전공분야로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에 관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엷은 귀의 심리학’에 관해서라면 최고 전문가라 할 그린스펀도 메이도프 금융사기에 걸려 거액을 날렸다. 편안한 노후를 위해 평생 모아 온 돈의 3분의1을 맡겼다가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그는 메이도프 사건이 터진 후 한 기고를 통해 “플로리다 여동생을 방문했다가 펀드매니저를 소개 받았다. 여동생이 추천한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사람인데다 지난 몇 년간의 확실한 투자실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그냥 보내 버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수많은 글과 강연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그토록 조심하라고 가르쳐 왔던 그 함정에 바로 자신이 걸려든 것이다.
투자에는 오르락내리락이 있는 법. 그런데 메이도프 펀드의 월별 수익 기록을 보면 전체 기간 중 단 4%만 내림이고 나머지 달들은 전부 수익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찍이 지난 2000년 메이도프 펀드의 사기성을 눈치 채고 관계기관에 이것을 진정하는 편지를 수차례 냈던 해리 마르코폴로스는 지난 주말 TV에 나와 “메이도프에 관한 얘기를 듣고 사기성을 눈치 채는데 단 5분 걸렸고 이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내는 데는 4시간이면 충분했다”고 말했다.
마르코폴로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투자 실적은 메이저리그에서 타자가 9할6푼의 타율을 기록하는 것과 같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각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무수한 유명 인사들과 증권 감독 당국은 메이도프의 사기 행각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투자 사기꾼들은 아주 뛰어난 심리 전문가들이다. 그린스펀 같은 심리학자들까지 속일 수 있을 정도이다. 메이도프의 경우 통상보다는 많았지만 누가 봐도 의심할 만큼 터무니없는 고수익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메이도프 스캔들의 교묘함이었다. 거기에다 메이도프는 나스닥 위원장 출신이라는 후광효과도 최대한 활용했다.
사람들은 후광효과에 약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BBK 김경준의 사기행각도 유명 인사를 등에 업었기에 가능했으며 초대형 투자사기로 몇 년 전 한인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C+인베스트먼트 찰리 이씨도 엄청난 씀씀이와 화려함으로 자기를 포장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 약속한 투자수익이 들어오면 처음의 의구심은 얼음 녹듯 서서히 사라지고 신뢰가 생겨난다. 그 신뢰는 새로운 투자가들은 끌어들이는 미끼가 된다. 그린스펀은 “다른 사람들은 돈을 버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회적 압력’이 친구나 동료의 ‘성공적으로 보이는 투자’에 덩달아 올라타게 만든다”면서 자기도 이런 압력에 휘둘렸노라고 고백한다. 투자사기에 교인들이나 동창들, 혹은 직장 동료들이 한꺼번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한동안 잠잠하나 싶더니 또 다시 투자사기 사건이 터져 한인사회를 들쑤셔 놓고 있다. 고수익을 보장하고 새로운 투자금으로 수익을 지급하는 전형적인 폰지수법 사기인데 피해액이 1,000만달러를 넘는다고 하니 파장과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답답한 것은 그동안 이와 유사한 사기가 여러 건 터지고 많은 상처를 입었는데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메이도프 스캔들이 보여주듯이 투자사기가 발생하는 것은 피해자들의 지능이 낮아서도, 또 탐욕의 결과만도 아니다.
피해자들이 이런 사기에 말려드는 데는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과신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중심적이다. 실제의 자기보다 스스로를 더 나은 존재로 평가하는 성향이 있는 것이다. “나 빼고는 다 월급도둑”이라는 인식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같은 성향은 자존감 유지의 원천이 되지만 자칫 잘못된 판단을 불러오기도 한다. 다른 이들이 당한 투자사기 사건을 보며 혀를 끌끌 차지만 막상 같은 상황에 놓이면 자기는 다르다고 하면서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된통 당한 뼈저린 경험 탓인지 그린스펀은 투자를 결정할 때 “의심하고 또 의심할 것”을 강조한다. 이런 회의적인 태도는 약육강식의 자연환경에서 인간을 지켜준 지혜이기도 하다. 영어에 ‘사실이라고 하기엔 너무 좋은’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런 표현이 떠오르는 투자권유라면 99% 허구나 허상이라고 보면 된다.
또 ‘사회적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주위 사람들이 놀랄만한 투자로 큰 돈을 벌고 있다고 자랑할 때면 “그래, 너 부자 돼라. 난 나대로 산다”고 호기 있게 되뇌어 보자. 남의 마음을 읽고 분석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조차 걸려드는 것이 투자사기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권력은 필멸하듯이 다른 이들의 어리석음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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