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여년전에 읽은 책을 얼마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잃어버린 장난감을 찾은 어린아이의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대하게 되었다.
야마자끼 도요꼬가 쓰고 김갑수가 우리 말로 번역한 책이다. 상중하로 된 세권의 책을 대강 훑어보며 처음 읽었을 때의 흥분을 되새긴다. 2차대전 마지막 도조 내각의 외상을 지낸 도고 시게노리가 임진왜란때 일본 사쓰마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라는 사실이다. 생소한 이야기라 처음에는 작가가 지어낸 소설의 가상인물인가 보다하고 의심도 했다.
다른 곳에 끌려간 조선도공들은 귀화하고 일본사람들이 되었는데도 이곳에 온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잃지않고 조선사람으로 살았다고 한다. 1890년대 말 박무덕이라는 조선 이름을 갖고 동경제대에 합격한 다음 일본 사족(양반) 도고라는 성 을 얻어 귀화 하기에 이르렀다. 외무성에 들어가 직업외교관으로 나치 독일과 소련주재 일본대사를 지냈을 만큼 유능한 외교관이었는가보다. 그리고 외상을 하다가 종전을 맞이했다.
일본 고위층에서는 그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알고 있었다고 한다. 야마자끼작가는 박무덕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 것이 아니였고 2차세계 대전때 일본계 미국사람들의 참전 이야기와 전쟁범죄자를 조사하는 과정을 다루며 두개의 조국에서 방황하는 젊은 일본계 미군 장교들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도고 시게노리가 전범중에 한 사람이어서 이 책에서 다루게 되었는가보다. 5년여에 걸쳐 쓴 책이고 퍽 감동 깊게 읽은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미국생활 20여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저 그런가보다, 그럴수도 있겠지 하고 강건너 불구경하는 정도였다.
거의 반세기 가깝게 해외에 산 이제 이책이 가진 의미를 생각한다. 나도 긴 세월을 미국에서 사는 동안“두개의 조국”이라는 말이 그들과는 다른 어려움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다른 민족과 함께 우리동포와 어울려 살며 좋은 추억이 있었는가 하면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경험도 했다. 그리 살면서도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나의 고집에 스스로 놀랄 때도 있었다. ‘아마 나도 이제 나이가 드는가보다’라는 생각도 든다.
역시 인간의 귀소본능 때문 인지 내가 한국에서 보낸 20여년이 좀 넘는 세월이 못내 그립게 여겨지기도 한다. 지금과는 달리 참 어려울때 한국을 떠났고, 너무 힘들게 치른 전쟁 다음이어서 나에게는 쉽게 돌아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했지만, 돌아갈 마음의 땅이 있다는게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도고 시게노리(박무덕)의 아버지가 일본에 귀화하며 300여년 동안 살어온 땅인데도 아들한데 이제는 돌아갈수 없으니 귀화하여 일본사람으로 살자고 했다고 한다. 돌아갈 땅이 없어서가 아니고 19세기말 조선의 운명이 다해간다고 생각하며 귀화 결정을 했을 것이다.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300여년간 조선계 일본사람으로 정체성을 잃지않고 산 대단한 가족이다.
이 책을 다시보며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 이야기를 찾아 기록을 잘 보존 했으면 한다. 도고 시게노리의 이야기도 우리가 발굴한게 아니고 일본 자료에 근거를둔 것이다. 지금 오클랜드에서 뜻있는 몇사람이 주축이 되어 Korean Historical Society라는 단체를 만들고 있다.
미국에서 우리들의 역사를 보존하자고 지난번 도산 안창호기념 학술대회 다음에 만나 뜻을 나누었다. 마음 같아서는 미국에서만 끝내는게 아니라 일본, 중국 그리고 러시아등 우리 동포가 퍼져 나간 곳과 유기적인 연계를 하여 오랜 유랑의 역사를 완성시켜야 되겠다.
언젠가 신문에 난 중국 당나라 때 서역을 점령한 이야기가 있다. 하늘의 끝이라는“파밀”고원을 군사 일만명과 함께 넘어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을 평정한, 중국이 자랑하는 무사의 역사다. 이는 다름아닌 고구려 후예 고선지 장군의 이야기다. 중국 친지로 부터 이 자료를 근래에 건네받고 우리 해외동포 역사를 보존해야 겠다는 뜻이 더 굳어 진다. 역사가 없는 민족이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하는데 우리 “두개의 조국”역사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몱인가 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두 문화에 잘 적응 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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