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회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 첨부된 이야기의 내용인즉, 전라남도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나병환자들을 보살피며 살아온 오스트리아 수녀 2명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간 이야기였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나병환자들과 함께 살아온 마리안 수녀와 마가레트 수녀가 나이가 들어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이 이야기는 다시 한 번 나의 가슴을 무겁게 두드렸다. 마리안 수녀는 1962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6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고 40년 넘게 그곳에서 나병환자들을 돌보다가 2005년 11월에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두 수녀는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다. ‘사랑하는 친구와 은인들에게’라는 편지 한 장을 남겼을 뿐이다. 이들의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할 수 없고 여러분에게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했음을 알렸을 뿐이다. 그들은 또한 부족한 외국인에게 큰 사랑과 존경을 베풀어준 것을 감사했고 그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이 있었다면 용서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들은 소록도의 천사 같은 ‘할매 수녀’로 주민들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주님 밖에는 누구에게도 얼굴 알리기를 꺼려했고 장갑 없이 맨 손으로 나병환자들을 치료하며 돌보는 섬김과 사랑의 삶을 살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와 요구하는 모든 인터뷰나 상장을 번번이 물리쳤다. 모든 영광을 주님에게 돌린 것이었다. 두 수녀는 본국의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도 환자들의 간식과 우유 비용으로 충당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헤진 가방 하나만이 들려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 그들이 왔을 때 나병 환자가 6,000여 명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좋아져서 환자도 600여 명 정도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알려지고,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난 것이다. 두 수녀의 ‘겸손한 사랑’이 귀중한 결실을 맺게 한 감격스런 삶의 현장이었다.
지금은 기독교에서 사순절로 지키는 계절이다.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고 돌아가신 예수를 기억하는 계절이다. 그리고 그 고난을 극복하고 다시 사신 예수의 부활을 기다리는 때다. 죽기까지 복종한 예수의 ‘겸손한 사랑’은 그의 부활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그 ‘겸손한 사랑’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사회에 사랑과 정의의 씨앗을 남기고 김수환 추기경은 이 세상을 떠나셨다. 겸허한 사랑과 절제의 삶을 보여주었고, 소박한 성품으로 항상 소외되고 고통 받는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섬기고 품어주었다. 그리고 추기경은 “서로 사랑 하세요”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그의 삶과 죽음은 아름다운 사랑의 흔적을 우리 가슴속에 남겨준 것이다.
그는 소박한 웃음의 소유자였다. 인자하고 인간미 있는 소탈한 인간이었다. 종교의 제도와 직위를 앞세워 군림하지 않았으며 다른 종교와도 폭넓은 아량으로 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높은 곳에 올랐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낮은 곳에 머물렀다. 원래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음을 고백하며 양지바른 작은 집에서 연기 나는 것을 보고 그 작은 집의 평범한 가장이 될 것을 희망하며 살고 싶었음을 진솔하게 고백한 소탈하고 솔직한 인간이었다. 언제나 겸손한 생각과 행동으로 정신적인 가치관을 유지하신 인간이었다. 어리석고 소탈한 모습으로 인생을 사신 것 같지만 그는 언제나 소박하고 겸손하였다. ‘겸손한 사랑’으로 세상을 품어주고 섬기는 모습으로 낮아져서 자비로운 사랑을 베풀고 무소유의 청빈함을 남기셨다. 부러진 안경, 낡은 신발과 지팡이를 남겼을 뿐 저금통장마저도 남긴 것이 없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 힘없고 무력한 사람들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겸손한 사랑으로 희망을 품게 하였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인 것을 알려주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를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일깨워주시고 그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사랑이 제일인 것을, 그 사랑도 ‘겸손한 사랑’이 제일인 것을 확인해 주셨다. 그리고 ‘겸손한 사랑’ 이야기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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