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의 7개 토후국중의 하나인 두바이는 최근까지 세계에서 가장 성장하는 꿈의 도시였다. 페르시아 만의 작은 항구였던 이 도시는 1960년대 해저 유전이 발견됨으로써 오일머니가 밀려들어 번영했다. 기하학적인 인공섬 위에 초현대식 고층건물과 세계최고의 호화시설이 들어서면서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가 된 이 도시는 말 그대로 ‘사막의 기적’이었다.
그런데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경기침체가 이 도시를 덮치면서 두바이의 신화가 침몰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전 인구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소비가 크게 위축되었다. 금융권을 비롯한 사기업의 침체가 드디어 정부의 재정까지 악화시켜 두바이 정부는 총 800억 달러의 채무를 갚지 못하여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위기에까지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석유로 번영했다가 고통을 겪고 있는 또 한 나라가 러시아이다. 러시아는 개방 개혁이후 경제난을 겪다가 10년 전 최악의 경제위기에 빠졌으나 1999년부터 석유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경제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석유가격이 곤두박질치면서 러시아 경제가 타격을 받아 푸틴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위대한 러시아’의 꿈은 물거품이 될 처지가 되었다.
역사상에는 이처럼 국가의 기초가 실물경제 위에 놓여 있지 않고 단순한 부에 의존했다가 국력이 무너진 예는 얼마든지 있다. 지리상의 발견이후 16세기에 세계최대의 부국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다. 16세기말 스페인은 전 세계 금의 83%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국내의 상공업을 발전시키지 않고 식민지에서 수탈한 금은으로 값비싼 외국물건을 사서 소비했다. 그 결과 세계경제의 주도권이 17세기에는 이들 국가에 무역거래를 했던 네덜란드에 넘어갔고 18세기에는 제조업을 키운 영국에 넘어갔다.
로마제국은 초창기에 시민들의 근면한 경제활동과 신성한 병역의무를 통해 대제국으로 성장하여 번영했으나 후에 이러한 기풍이 사라지면서 멸망하게 된다. 즉 귀족들은 피정복지의 수탈정책으로 호화생활을 누렸고 국가의 방위는 돈을 주고 고용한 이민족의 용병이 도맡았다. 결국 이 위대했던 제국은 이민족 용병대장에게 멸망되고 말았다.
지금 금융위기와 경제침체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오늘날 각국의 경제가 세계화로 인해 분업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국이 금융위기로 경기가 침체하여 소비가 줄어들자 대미수출이 많은 중국의 산업생산량이 급감하여 고용이 줄고 따라서 경기침체를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이 한명이라도 고용을 더 늘리기 위해 보호무역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보호무역이 재앙이라고 반대가 많은 것은 현재와 같은 세계화 상태에서 각국 사이의 경제유통이 막히면 모든 나라가 곤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각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이 공적 구제자금을 받는 기업에 대해 ‘바이 아메리카’ 조항을 달았고 각국이 보조금 성격의 경기부양자금을 풀고 있다. 최근 인도, 러시아, 터키, 우크라이나, 중국 등은 일부 품목에 대한 관세를 경쟁적으로 올리고 있다.
보호주의가 세계경제에 타격을 주는 악재이지만 경제가 어려울수록 “나부터 살고보자”는 이기주의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 만약 세계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전쟁의 발발 등 긴장상태가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국제간의 경제교류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는 지탱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경제의 붕괴는 물론이고 나아가서 국가적 존립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지금 경제위기상황에서 개인이나 기업의 구조조정이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금융업과 서비스업에 의존하면서 그것마저도 외국의 ‘백 오피스’에 맡기고 있는 미국과 지나치게 수출과 수입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국가경제의 구조조정도 단행해야 한다. 이번 경제위기가 바로 이점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이기영 .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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