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하는 교회에서 전 교인이 지난주 금요일 새벽 0시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식사를 안 하는 ‘30시간 기아체험’(30 Hour Famine)이란 행사를 했다.
하루 조금 넘게 곡기를 끊었다가 마지막에 교회가 제공하는 강냉이 죽을 먹는 것으로, ‘배고픔의 고통’과 ‘한 끼의 소중함’을 몸으로 직접 겪어보고 점심 식사비를 아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자는 취지였다. 행사를 통해 모아진 헌금으로 올 한해 교회 한편에 쌀부대를 쌓아 놓고 필요한 사람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한 ‘사랑의 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하루 끼니를 굶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왕년에는 먹는 일이든 굶는 일이든 자신 있었던 기자였건만, 그것은 생각일 뿐. 몸은 어느새 ‘입맛의 추억’을 따라 아귀아귀 먹는데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평소보다 좀 일이 많았던 직장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허기가 좀 느껴졌지만 헬스클럽에 들러 1시간 가까이 운동을 한 것이 실수였을까. 구입할 물건이 있어 잠시 방문한 할인매장 코스코(Costco)에서 시식용으로 주는 작은 야채수프 샘플을 자연스레 받아들었다. 배고픔 속에 기아 체험을 잊지 않고 있었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수프를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수프를 입가에 살짝 대는 순간, 함께 굶고 있던 아들딸의 얼굴이 떠올라 부끄러움 속에서 그만 두어야 했다. 허기가 심했던지 새벽 3시30분에 잠이 깨어 이 칼럼의 일부를 메모해 두는 일까지 겪어야 했다.
통계에 따르면 지구촌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평균 2만6,000명이 5세 미만 아동들이 기아와 질병, 가난 등 예방 가능한 원인으로 죽어간다. 천하보다 귀한 어린 생명이 3초에 하나씩 스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배고픔이란 우리처럼 일회성으로 ‘체험해 보는’ 이벤트가 아니다. 젖 먹던 힘과 온몸의 저항력을 동원해 반드시 견뎌내야만 하는, 그렇지 못하면 생사의 갈림길에서 순식간에 ‘사’쪽으로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벼랑 끝이다.
70세가 넘으신 존경하는 장로 한 분이 있다. 그는 얼마 전 교회의 작은 모임에서 “약 13년 전부터 매주 세 끼를 금식하며 모은 돈으로 북한 동포들을 돕는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고 밝힌 일이 있다. 자랑하듯 떠벌린 것이 아니라 마침 성경에 대한 깨달음을 나누는 자리에서 조심스레 털어놓은 것이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구약성경 이사야였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이 구절을 읽고 그는 헐벗고 굶주린 북녘의 동족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 함께 자그마한 실천을 시작한 것이다.
나흘 전 선종(‘인생의 끝맺음을 잘 하면 사람들이 그를 본받는다’는 뜻으로 죽음을 가리키는 가톨릭 용어)한 김수환 추기경의 삶이 모두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엄청난 추모 열기가 장기기증과 자원봉사 열풍을 불러오고 사회 통합의 신드롬까지 낳았다.
40만명의 조문객이 모여든 것은 그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좌우명대로 청빈과 순종 속에 한 평생을 베풀며 나누며 ‘시대의 등불’로 살았기 때문이다. 국가와 민족을 뜨겁게 사랑하고 일신의 영달은 잊은 채 남의 유익을 위해 마지막까지 각막을 기증하고 간 인생에 누가 존경의 염을 누를 수 있으랴.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빛을 비췄던 그의 묘비에는 간명하게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라는 시편 구절과 출생 및 사망 일자만 적히고 약력 등은 명기되지 않았다. 장례절차를 소박하게 해 달라고 평소 부탁했던 김 추기경은 청빈을 상징하는 평범한 삼나무 관을 지상의 마지막 집으로 삼았다.
모두가 어려운 때다. 어두운 터널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아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시기일수록 내 자신의 문제에서 눈을 돌려 더 어려운 이웃들을 보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었으면 좋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지만, 오히려 우리 모두 ‘하늘은 남을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마음에 품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김 추기경의 선종을 대하는 우리 모두의 바른 자세가 아닐까.
김장섭
종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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