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095년 11월27일 교황 우르반 2세는 프랑스의 클레르몽에 소집한 교단회의에서 유럽의 전 기독교인이 이슬람에 맞서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할 것을 촉구했다. 당시 유럽의 서부는 로마교황의 영향 아래 있는 기독교 국가들이고 동부는 이른바 정교회 국가인 비잔틴 제국이었다. 그리고 동쪽의 소아시아와 중동은 셀주크 투르크와 사라센이 지배하는 이슬람지역이었다. 이 교황의 호소에 따라 1096년 서구와 비잔틴제국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십자군전쟁을 일으켜 약 200년간 이슬람 세력과 싸웠다.
그런데 이 성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기독교 국가들은 먼 거리를 원정해야 했고 막대한 병력을 충원해야 했기 때문에 교황은 강도와 같은 범죄자들과 천민들을 원정에 참가시켰고 이들이 원정에 참가하자마자 면죄부를 주었다. 면죄부를 받은 사람들은 즉시 범죄전과가 말소되었고 빚이 탕감되었다. 그래서 제1차 십자군 원정군에는 범죄자들이 많았다. 로마교회에는 원래부터 헌금을 받고 죄를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면죄부가 성행하여 로마교회의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1476년 교황 식스투스 4세는 이미 죽은 사람의 면죄부까지 만들어 팔았고 레오 10세는 재정보충을 위해 대규모적으로 면죄부를 팔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대해 독일 비텐베르그 대학의 교수인 마틴 루터가 1517년 면죄부 판매에 대한 95개조 논제를 대학 게시판인 비텐베르그 성교회의 문에 게시하여 이를 맹렬히 비난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어 오늘날 수많은 교파의 신교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면죄부를 사면 죄를 용서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교회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 할 수 없고 또 교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성경에는 인간이 원죄를 가진 존재라고 하지만 신교에서는 십자가의 보혈로 대속되었고 구교에서는 세례로 씻어졌다고 하지 않는가. 그 이후의 개인적인 죄는 신교나 구교나 모두 회개에 의해 용서받게 되는 것이다.
면죄부처럼 물질로 죄를 상쇄하거나 경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상은 다른 종교에도 있다. 불교에서는 부처에게 공양하고 중이나 가난한 사람에게 물질을 주는 것을 보시라고 하는데 불교신자들은 보시를 통해 업을 갚는다고 생각한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시를 함으로써 사람이 모든 공포에서 해방된다는 무외시라는 보시가 있다고 한다. 또 기독교에서는 십일조 헌금이 의무화되어 있다. 소득의 10분의 1을 교회에 내는 십일조 헌금에 대해 어떤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이 헌금을 내면 축복을 받는다고 하고 또 어떤 목회자들은 이 헌금을 내지 않는다면 벌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성교회에서 이단 또는 사교라고 몰아 부치는 종교집단들은 신자들로부터 물질을 받아들이는데 아주 도가 터있다. 어떤 종교집단은 개인의 재산을 전부 헌납하게 하고 또 어떤 집단은 개인의 재산 뿐 아니라 노동력까지 모두 바치게 하여 신도를 일종의 노예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떤 종교집단이 사교냐 아니냐를 잘 구분할 수 없을 때는 그 종교집단이 신자의 재산을 수탈하는 방법과 정도로 가늠해보는 것도 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종교개혁 당시인 1567년 면죄부 판매를 금지한 가톨릭교회가 최근 면죄부를 다시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새 천년을 축하하자는 의미에서 주교들에게 면죄부 발급권한을 주었다는데 현 교황인 베네딕토 6세가 들어서면서 면죄부 발급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 인터넷 판이 최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워싱턴, 뉴욕, 피츠버그 등 미국 가톨릭 교구에서 교회공보나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면죄부 발급 교회와 절차를 알리는 광고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가톨릭교회에서는 고해성사를 하더라도 곧바로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과 천국의 중간에 있는 연옥에 머물러야 하지만 면죄부는 이 기간을 단축시키거나 없앨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뉴욕 브루클린의 니콜라스 디마지오주교는 “우리가 면죄부를 다시 발급하게 된 것은 세상에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내고 있는 현실을 보니 세상에 죄가 많기는 많은가 보다.
이기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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