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담도 아닌데, 나의 쓸개주머니를 떼 내야 한단다. ‘삶은 황홀하고 죽음은 사람의 손을 떠나는 것’ 수술 날짜가 2009년 1월30일로 잡혔다.
수술은 오전 8시 45분으로 잡혔다. 수술 전 준비관계로 2시간 전에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새벽 3시에 잠이 깨서 서성이다 곤하게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고 병원에서 준 특수비누로 샤워를 마쳤다. “병원에 가는 것은 파티가 아니거든요” 하는 아들의 말처럼 목걸이 등 쇠붙이는 일절 빼고 병원으로 행했다. 언제나처럼 즐겨 다니던 북향 95번 하이웨이, 오늘은 이른 새벽이라 길이 확 트여 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순식간에 무산되고 출근하는 차들의 빨간 테일 램프(Tail Lamp)가 물결을 이루며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볼티모어 북쪽 벨에어서 달려오고 있는 딸과 사위, 지금 맥킨리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우리 부부가 병원에 도착한 것은 오전 6시 10분 전이다. 안내 데스크를 거쳐 수술장이 있는 7층 7호 수술실로 갔다. 입원실도 7호, 7자가 셋이나 겹쳤으니 포커 게임의 트리플이 아닌가. 거기다 원 페어만 더 붙으면 풀 하우스, 기분이 좋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도 환자의 입장에서는 긴장이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으니 참으로 행운이다.
수술 예비실에서 옷을 다 벗고 환자 옷으로 갈아입은 후 혈관을 찾아 주사바늘 꽂기에 성공, 일차 난관을 무사통과 했다. 나는 수술 받을 환자 같지 않고 불안 초조도 없다. 마치 심해를 항해하는 항공모함에 탄 기분으로 태평스럽게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의료진의 움직임을 보며 의술의 발달에 놀라고, 심혈을 기울여 촌각을 아끼며 일사불란으로 맡은 소임을 다 하고 있는 의료진을 보며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금상첨화로 옆에 반석같이 받쳐 주고 있는 남편, 세심하게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도와주고 있는 딸 내외 또한 자신이 이 병원 교수로 권위자를 선정, 집도 하게끔 모든 것을 신속처리해 준 아들이 지켜주고 있다.
수술실로 향한 카트에 실려 웃으며 들어간 것 까지는 기억하고, 딸이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니 이미 수술은 끝났고 통증도 없다. 오른손 편에 남편이, 양쪽으로 딸과 사위가 지켜보고 있다. 따뜻한 가족들의 안도하는 눈빛을 보고 천정을 올려다보니 아직 마취가 덜 깬 듯 빙글빙글 비엔나 왈츠가 흐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식은 있는데 계속 졸음이 몰려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문득 눈을 떠 보니 남편, 딸과 사위는 없고 아들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아들은 내 수술 닷새 전 자신의 집에서 세 살 된 딸과 공놀이를 하다 허리를 다쳐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소동을 겪어 목발을 짚고 다닌다. 운전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동조차 힘들 정도였지만 아들은 미음과 죽을 쑤어 오신 장인의 부축을 받으며 나를 보러 왔다. 이 혹한 이 한밤중에…
담석증이란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기까지의 2개월여, 심한 복통 한두 번 있었고 한기, 새벽녘의 메슥메슥한 증상이 가시고 나면 멀쩡한 상태였다. 그러나 드물지만 있을 수 있는 담낭파열의 응급상황을 피하기 위해 수술을 받기로 했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고민 고민하다 수술을 받기로 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열흘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 나는 집에서 편안히 회복을 기다리며 몸은 망중한이나 머리 속은 거미줄 투성이의 농가 고옥처럼 어지럽다. 사람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결단을 내려야하는데 자신감이 없어 우유부단해질 때 신속하고도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진실된 충고와 서슴없이 밀어주는 힘이 필요하다. 그 역할은 가족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좋은 친구는 이때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어쩌랴, 인간 한 사람이 한계가 있는 삶에서 무엇이 그리 잘 났다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슬픈 습성, 참으로 충언역이언(忠言逆耳諺))이요 양약구미어(良藥口味於)라,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리고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였던가.
화창한 날의 창밖을 내다보며 많이 반성하고 수술 회복기의 조용한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병든다는 것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구나’ 입속으로 되뇌이며 ‘굿바이, 나의 담낭’을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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