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의 서곡이었던 1929년 증시 대폭락이 있은 다음 해인 1930년 6월17일 세계무역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제정되었다. 대공황하면 대량 실업률과 경기의 추락 그리고 수많은 은행의 파산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역사에서 보면 스무트 홀리 관세법 역시 대공황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될 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미국은 본 법안의 통과로 약 2만개에 이르는 품목에 대한 관세를 올렸고 이에 분노한 미국의 주요 무역상대국이었던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이 어떤 형태로든 보복 무역장벽을 실시함으로써 무역전쟁이 발생했다.
이 무역전쟁의 결과 미국의 경우 1929년 기준 44억달러이던 수입이 1933년에 이르러 15억달러로 66%가 줄어들었고, 수출의 경우에는 같은 기간 54억달러에서 21억달러로 61%나 떨어졌다. 전 세계적으로도 1929년부터 1934년 사이 66%의 무역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적으로 과연 스무트 홀리 관세법안의 통과와 그 이후 벌어진 보복장벽으로 급격히 떨어진 전 세계 무역이 대공황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가져왔는지를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폭락과 금융권의 몰락 등 대공황을 일으킨 다른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전 세계의 무역량을 66%나 떨어뜨린 관세 법안이 대공황을 가져온 주범 중 하나이거나 악화시켰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런 각도에서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에 처한 지금의 상황에서 보호무역의 정서가 부활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보호무역론이 힘을 얻게 되어 있다. 우선 전체적 경기침체가 다가오면 국내 산업이 위험에 처하고 그러다보면 국내 산업을 외국경쟁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싶은 유혹이 당연히 다가온다. 외국경쟁을 막아버리면 국내 산업이 더 많이 팔 것이라는 단순한 산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경제가 어려워지면 국가간 관계가 나빠지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과 같은 최악의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때 자원의 자립이 중요하다는 의식이 생겨난다. 소위 자원의 안보론이다. 국가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식량 같은 전략상품에 대해 높은 장벽을 치거나 아예 수입을 금지시켜 자립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가 보호무역을 부추긴다.
이러한 보호무역에 대한 우려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의 미국 무역량이 18%나 줄었다. 다른 주요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경제의 빨간불이다.
여기에 보호무역주의까지 부활한다면 대공황과 같이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런데 우려스럽게도 보호무역의 부활을 알리는 징조가 많아지고 있다.
신임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중국의 환율이 조작되었다고 공격을 시작해 긴장이 커지고 있다. 이에 질세라 중국의 원자바오 주석도 중국의 환율은 합리적이라면서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이러한 무역장벽 올리기는 한 국가가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서로서로 보복을 하면서 점점 더 높아지고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는 자충수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보호무역 정신을 막아내는 길은 전 국가간 공조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 경제포럼에서는 보호무역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국제적 공조는 언제나 의도만 확인될 뿐이지 결국 현실에 가서는 그 나라의 개인적 처지에 따라 편견으로 흐르게 돼 있어 효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그냥 쉽게 우리도 어려운데 남 사정 봐줄 때냐는 한마디는 당장 어려워진 국민에게 분명히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가 어려워질수록 더 많은 교역을 통해 경제성장을 추구해야만 위기가 빨리 극복되고 대공황과 같은 참극은 피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는 대공황의 교훈을 잊은 채 지나친 낙관론으로 또 다시 대공황에 버금가는 거대한 거품을 만들어 지금 고통 받고 있다. 그런데 대공황 때의 스무트 홀리 관세법안처럼 보호무역주의마저 다시 부활해 경제를 더 어렵게 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역사에서 배우는 게 무엇인가라는 자조감을 피할 길이 없다.
당장 내 눈 앞에 보이는 기회주의에 편승하지 않고 장기적 상생의 길을 외치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유무역의 정신을 지켜나갈 책임을 지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운화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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