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삼(소유디자인그룹 대표)
공사는 상담 후 이어지는 설계사의 도면 의뢰부터 시작된다. 설계사는 프로젝트 스케줄에 맞추어 도면 작업을 준비하고, 고객은 그 도면으로 공사 시공업자에게 견적을 의뢰한다. 견적을 바탕으로 공사 금액과 공사 기간의 협상이 이루어지고, 준비된 도면은 빌딩국에 제출돼 working permit을 기다리게 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도면의 중요성이 과연 고객에게 얼마나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고객이 생각하는 도면과 설계사가 준비하는 도면은 과연 같은 도면인가? 같은 도면을 가지고 받는 견적이 왜 이리 천차만별일까? 어디서 이런 이해의 폭이 생기는지 의문을 가져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 바란다.
개인 Design&Build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처음 직면한 문제가 바로 고객과의 도면에 대한 이해 차이였다. 어려운 경기를 이유삼아 공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도면 작업이 적지 않은 경우 가볍게 다뤄지는 안타까운 현실이 종종 발생한다. 미국 설계회사에서 일할 당시 설계비는 프로젝트 전체 공사비의 작게는 10%에서 많게는 30%까지의 무게를 차지하곤 했다. 이 도면들은 단순한 허가 도면 뿐 만이 아니라 디자인 도면, 디테일 도면, 기술자들의 도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도면은 그냥 종이 몇 장이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의 시간이 투자되어 이루어지는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빌딩국(Building Department)에서 요구하는 허가 도면은 그야말로 공사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면이다. 벽이 어떻게 세워지고 문을 어느 쪽에 달아야 하며, 화장실이 몇 개가 필요한지, 기존의 전기 용량으로 새로 하는 조명 시스템, 기계 설치에 적합한지, 불이 났을 경우 필요한 피난구(egress)와 Fire alarm 등이 포함되어 있는지 등 빌딩국에서 알고 싶어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 들어 있는 도면을 허가 도면이라고 한다. 거기서 요구되는 기본 조건은 말 그대로 기본일 뿐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실제 공사에서 그 도면이 기본 조건만 충족할 뿐이라면 시공자가 공사를 끝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확한 디테일이나 Spec이 없는 도면으로 어느 시공자도 설계사나 고객의 마음을 읽어내 공사를 마무리 할 수 없기 때문이다.많은 분들이 디자인 도면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착오를 범하는 경우를 보면 정말 안타깝다. 뼈대를 이루는 게 허가 도면이라면, 살과 피를 이루게 되는 것은 디자인 도면이다. 천장, 벽, 바닥
의 마감재료, 마감색감, 조명 선택 등 디테일의 완성을 높이는 디자인 도면이 없다면 공사 진행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고객이 어두운 나무 바닥으로 시공해달라고 했을 때 공사업자는 재료를 walnut, mahogany, wenge, dark cherry 등 여려가지 재질의 나무 중 선택해야 한다. 이처럼 허가 도면을 끝내고, 많은 자료와 정보가 필요하지만 이 모두를 고객과 공사 업자가 풀어나가기에는 일의 양이 많아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디자이너와 고객이 디자인 미팅을 가진 후 3D rendering을 기본적으로 권한다. 평면 도면이 입체화 되어 실제 사용
하게 될 재질로 사진을 보는 듯 한 눈에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마감 재료와 전체적인 공간에 대해 고객과 공사 업자의 동의가 이루어지면 디테일 도면으로 이어간다. 벽의 마감이나 millwork, finish 연결 등. 보통 벽의 평면 elevation이라 하는 도면 작업
reflected ceiling(천장 도면) 그리고 디테일 도면이 디자인 도면을 이룬다.
허가 도면과 함께 준비된 디자인 도면은 공사 시공업자들의 견적의 폭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면서 쉬운 접근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도면에 표기되지 않은 정보들의 부족에서 오는 잘못된 재료들의 선택, 불충분한 디테일 도면들에서 오는 고객과 공사 시공업자들의 견해 차이는 공사 기간의 연장 이외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세분화되어 준비된 디자인 도면과 입체 도면으로 공사 시작 전에 전체적인 공간의 이해와 함께 작은 부분의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알 수 있다면 공사 스케줄과 전체 공사비의 단계적인 Payment 스케줄도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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