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구스타보 두다멜이 객원지휘한 LA 필하모닉의 콘서트를 관람한 적이 있다. 작년 11월30일 프로그램이었는데 리게티의 ‘대기’(Atmospheres)와 스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Four Last Songs)에 이어 연주한 베토벤의 6번 교향곡(‘전원’)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과 전율을 선사했다. 도대체 이제 스물일곱 살의 청년 지휘자가 왜 그렇게 세계적인 스팟라잇을 받으며 차세대 마에스트로로 떠올랐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된 콘서트였다. 그의 지휘는 폭발적이고 열정적이었으며 듣는 이의 영혼을 빨아들일 듯 마력적이었다. 아니, 그의 지휘는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더 매혹적일 만큼 화려하고 격정적인 퍼포먼스였다. 나는 그 엄청난 음악의 파워에 압도당해 하루 빨리 그가 LA필에 ‘강림’해주기를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구스타보 두다멜이 우리 앞에 등장했다.
첫 회견 취재진 수백명 인기 실감
클래식 변방 베네수엘라 출신
‘커뮤니티와 함께 하는 음악’ 강조
12세부터 지휘, 말러경연 우승 스타 부상
두다멜은 누구
1981년 베네수엘라의 바르키시메토에서 태어났다. 주민 75%가 빈곤층으로 범죄와 폭력이 빈번한 이곳에서 그는 저소득층 예술 교육시스템 ‘엘 시스테마’를 통해 바이얼린을 배웠다. 열두살 때부터 지휘를 했다는 그는 17세 때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SBYO)의 상임지휘자가 됐고, 2004년 말러 지휘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혜성처럼 세계무대에 등장했다.
2005년 SBYO와 함께 가졌던 유럽 투어를 통해 ‘두다멜 현상’을 일으킨 그는 이후 말러 체임버, 이스라엘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해 화제가 됐고, 2007년 스웨덴 고덴버그(Gothenburg)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지난해 12월 두다멜과 SBYO는 한국을 방문, 멋진 공연을 펼쳐 한국 팬들로부터 열화같은 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는 LA 필의 상임지휘자로 일하면서 고덴버그 심포니와 SBYO의 상임지휘자 직을 겸하게 된다.
두다멜을 키워낸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음악가이며 정치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1975년 설립한 저소득층 청소년 음악 프로그램으로, 11명으로 시작해 현재 27만명이 참여하고 있고, 125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수백개의 합창단을 둔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LA 필은 엘 시스테마를 본따 ‘욜라’(Youth Orchestra LA)를 설립, 센트럴LA의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음악교육을 시키고 있다. 욜라의 첫 프로젝트인 ‘엑스포 센터 유스 오케스트라’는 8~14세 단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오는 2월21일 오후 9시 샌티 고교에서 첫 공연을 갖는다.
“나에게 음악이란 이웃과 소통수단“
두다멜 때문에 LA 음악계가 잔뜩 흥분해있다. 지난 22일의 LA필하모닉 기자회견(23일자 본보 2면 보도)은 그 인기를 여실히 증명해준 이벤트였다. 그날 프레스 컨퍼런스에는 디즈니홀 객석이 가득 차도록 수백명의 취재진과 음악 관계자들이 모여들었다. 절대 다수가 두다멜보다 나이 많은 이들은 모두 기대에 가득 찬 모습, 이 ‘어린’ 신동 지휘자가 궁금하고 예쁘고 좋아서 죽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작은 체구에 희고 섬세한 손이 매혹적인 두다멜은 ‘음악계의 오바마’라고 불리는 것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여러 면에서 오바마를 연상케 한다. 그는 흑인은 아니지만 클래식 음악계의 변방인 남미 베네수엘라 출신이고, 둘다 젊고 잘 생겼으며, 혁신적이며 신실하고, 절망의 시기에 혜성같이 등장해 희망과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공통분모를 가졌다.
웹캐스트를 통해 생중계된 이날 기자회견에서 두다멜은 자신을 엄청난 기대로 환영하는 LA에 대해 무한히 감격하는 모습이었다. 상당히 겸손하고 따뜻한 표정, 영어는 서투른 편이지만 그는 여러번 반복해서 ‘커뮤니티와 함께 하는 음악’을 강조했다.
그에게 있어 음악은 이웃과 소통하는 수단이고, 인생을 변화시키는 그 무엇이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 중요한 도구이다. 그는 “우리의 할아버지가 들었고 아버지가 즐겼던 클래식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고 말하고 “사람들은 아메리카를 북미와 중미, 남미로 나누지만, 음악을 통해 하나의 아메리카 대륙을 이루고 싶다”고 강조했다.
“클래식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장르”
데보라 보다 LA필 대표이사는 “두다멜은 LA필이 유지해온 혁신의 전통을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이뤄갈 것”이라며 “매우 ‘구스타보 적’이고 매우 ‘LA필’적인 특별한 파트너십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약 20년 전, 30세를 갓 넘긴 에사 페카 살로넨을 제10대 상임지휘자로 지명함으로써 ‘파격’이라는 칭찬과 비난에 시달렸던 LA필은 그 파격 덕분에 오늘의 유수 오케스트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제 그 LA필이 더 놀라운 파격으로 더 큰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그 역사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크나큰 행운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다음은 2009/10 시즌에 구스타보 두다멜이 연주할 주요 콘서트 스케줄이다. 여기 소개한 공연들 외에도 다음 시즌 LA필은 다양한 시리즈의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티켓 문의는 올 봄부터 시작된다.
“하나의 아메리카 음악 통해 이룰 것“
▲‘환영 구스타보!’(Bienvenido Gustavo!: A Musical Celebration of Los Angeles)-10월3일, 할리웃보울: 무료로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이 행사는 오후 3시부터 시작돼 하루종일 모든 커뮤니티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메가 콘서트로, 오후 7시 두다멜이 LA 매스터 코랄을 비롯한 LA의 코러스들과 함께 베토벤 9번 합창교향곡을 지휘함으로써 절정을 이룬다.
▲취임축하 음악회(Inaugural Gala)-10월9일, 디즈니 홀: 전세계로 중계되는 가운데 존 애덤스의 ‘시티 누아르’(City Noir)를 두다멜이 세계 초연한다. LA필의 위촉으로 작곡한 곡으로 애덤스는 기자회견에서 “1950년대초 전후 캘리포니아의 풍경과 분위기, LA라는 도시의 특별한 무드와 필름 누아르 적인 어두운 문화를 표현한 심포니”라고 설명했다. 두다멜은 이와 함께 자신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첫 작품, 말러의 1번 교향곡을 지휘한다.
▲두다멜 콘서트 시리즈(Dudamel’s Subscription Concerts): 이번 시즌 9개의 프로그램을 선보이는데 그 첫 콘서트(10월9, 10, 11일)는 한인 작곡가 진은숙의 ‘생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첼토’(Concerto for Sheng and Orchestra) 미국 초연이다. LA 필의 위촉으로 만든 이 곡에 대해 진은숙은 “동양적 혹은 유럽적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매우 비전형적인 1악장 협주곡”이라며 “솔로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경쟁하지 않고 하나로 융화된 곡”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11월 5~8일, 12~15일, 19~22일에 베르디와 슈베르트, 모차르트를 연주하고 ‘웨스트 코스트: 레프트 코스트’(West Coast: Left Coast 11월27~29일) 페스티벌에서 살로넨, 해리슨, 애덤스의 곡을, 2010년 4월부터 시작되는 ‘아메리카스 아메리칸스’(Americas and Americans) 페스티벌에서는 차베즈의 타악기를 위한 토카타로부터 차이코프스키의 6번 비창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무려 11개의 다양한 음악을 지휘한다.
<글 정숙희·사진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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