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분야의 제2의 혁명적 발명은 IC(Integrated Circuit)
실리콘 밸리의 인텔에서 탄생, 컴퓨터 세계 근본적 변화.
트랜지스터 연구는 윌리엄 샤클리(William Shockley)를 팀장으로 존 바딘(John Bardeen), 월터 브러테인(Walter Brattain)이라는 3명의 과학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인데 이 세 과학자는 1956년에 노벨 물리상을 받게 됫다.
샤클리는 매서추세츠공과대학(MIT)출신으로 광산 엔제니어였던 아버지가 일 관계로 런던에 거주하고 있을 당시 거기서 태어났다.
런던에서 일이 잘 안되어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스탠포드대학 근처인 팔로 알토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윌리엄 샤클리는 소년시절을 그 고장에서 지냈다. 1932년에 칼텍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데 이어 MIT에 가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을 했다.
박사학위 취득과 동시에 그는 뉴저지 소재 벨 랩(Bell Lab)에 연구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의 뛰어난 재능으로 그는 트랜지스터 개발 팀의 팀장을 맡게 되었는데 원래 대인관계가 거칠고 성격이 괴팍해서 동료들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샤클리는 독불장군이었고, 대인관계가 껄끄러웠기 때문에 벨 랩 측은 승진 때가 되었음에도 그에게 중역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본인의 공적이라던가 회사에서의 중요도 등을 감안했을 때 응분의 대우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샤클리는 벨 랩에 불만을 갖고 1953년에 사직서를 던진 뒤 캘리포니아로 돌아가서 독립을했다.
그는 아놀드 벡맨(Arnold Beckman)이라는 칼텍(Cal Tech)의 동창에게 자금의 뒷받침을 의뢰하게 된다. 아놀드 벡맨은 공장용 분석기기를 만드는 벡맨 인스트루먼츠(Beckman Instruments)라는 회사를 설립운영 하면서 상당한 경제적여유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샤클리의 재능을 높이 사서 벡맨 인스트루먼츠 산하에 샤클리 세미컨덕터 러보러터리(Shockley Semiconductor Laboratory)를 설립케 했다. 이 반도체 연구소는 조직상으로는 벡맨 인스트루먼츠 산하의 조직이었지만 거의 샤클리가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체였다.
샤클리 연구소는 스탠포드의 터먼 교수의 권유로 스탠포드 인더스트리얼 팍(Stanford Industrial Park)에 자리하게 된다. 신축 건물이 완공될 때까지 일단 인근인 마운틴 뷰(Mountain View)에 임시 사옥을 마련해서 개업을 했다. 마운틴 뷰의 임시사옥은 나무 기둥이 노출된 콩크리트 불럭으로 만든 초라한 건물로서 과수원에서 딴 살구를 건조하던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지금은 가구점이 자리를 하고 있는데, HP Garage와 더불어 실리콘 밸리 발상지로 인정이 되고 있다. 그 건물 앞에는“이 건물은 1956년에 윌리엄 샤클리 박사가 처음으로 실리콘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고 생산을 한 곳입니다. 이 건물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나아가서는 실리콘 밸리를 형성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 코퍼레이션(Fairchild Semiconductor Corporation)을 형성해서 최초의 IC(Integrated Circuit)를 발명했고 실용성 있는 물건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쓴 말패가 붙어 있다. 이 건물의 주소는 391 San Antonio Road, Mountain View 이다.
샤클리 반도체 연구소에서는 창업과 더불어 전국에서 전자계통의 수재들을 많이 끌어 들였다. 샤클리의 명성도 있었고 전자계통에 새 시대를 약속 해 주는“반도체”라는 물건에 대한 동경심도 있었고 해서 이 분야에서 일가견을 갖고 있는 많은 수재들이 모여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샤클리가 실리콘 밸리의 형성에 공헌한 중요한 역할은 미래의 테크노로지를 서부로 옮겼다는 점이지만, 그보다 더 큰 공적은 우수한 인재를 실리콘 밸리에 모여들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샤클리는 노벨상 수상자라는 본인의 명성을 최대한으로 이용을 하면서 본인이 직접 나서서 미국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능 있는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에게 연락, 본인의 샤클리 세미컨덕터로 끌어들였다. 이중에는 훗날 IC (Integrated Circuit)를 발명한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가 끼어있었다.
샤클리는 인재들을 끌어 들이는 데는 성공을 했지만 이들이 만족스럽게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샤클리는 타고난“독불장군”개성 때문에 무엇을 해도 혼자서 하고, 부하들도 거칠게 다루었으며 무질서하게 조직을 운영하였기 때문에 연구원들의 자발적이고 규합된 노력을 기대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내부 분열이 생기고 이탈자가 생겨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을 수가 없었다. 1957년에“키 멤버”중에서 중진 8명이 단체로 이탈을 해서 새로운 회사를 꾸미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8명에 대해서 샤클리는“8명의 배신자”(the Traitorous Eight)라는 이름을 붙였다. 연구원이나 파트너들이 어느 정도 크면 이탈해서 독자적인 길을 걸고, 또 그 조직체가 어느 정도 크면 그 속에서도 그러한 사람이 또 생겨서 가지를 쳐나가는 현상은 실리콘 밸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