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단어만큼 자주 거론되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정서를 가졌다면 누구나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며, 사랑만큼 인생을 인생답게 하는 것은 없지만, 또한 사랑하는 것만큼 쉽지 않은 것도 많지 않다. 사랑은 반드시 희생을 동반하는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들의 본질적 이기심, 욕심, 자아 중심적 사고 때문일 것이다. 짧지 않은 인생길에 또한 깨달은 것은 본인은 사랑의 발로라 생각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오히려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성탄절 즈음에 본인이 박사학위 공부를 할 때의 지도교수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부인이 쓴 편지다. 그 교수는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이태리계의 미국인이라 급하고 감정적인 성격도 비슷해 충돌한 적도 꽤 있지만 학위 취득 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친구로 가깝게 지낸다. 대부분 학위 취득 때쯤이면 스트레스로 지도교수와 많이 다투고, 졸업 후 서로 연락을 잘 안 한다는데 이렇게 오래 사귈 수 있음은 감사하고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된다.
일 년에 몇 번은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작년 중순부터 연락이 통 안 되어 궁금하던 중 같은 학교의 다른 교수로부터 건강이 아주 나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찾아가려고 연락을 여러 번 시도해도 안 되던 중 편지를 받았다. 사연인즉 작년 중순경에 진전된 간암 진단을 받아 화학 치료를 받으면서 유일한 희망인 간이식 수술을 기다리던 중 8월에 마침 기부자가 생겨 수술을 받았는데 이식 받은 간이 훼손을 입어 제대로 기능을 안 했다는 이야기다. 이 부부가 느낀 실망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그러나 다행히도 곧 새로 간이식 수술을 받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이 피 마르는 과정을 거치면서 편지를 통해 알려온 이분들 친구들의 사랑과 희생은 나 자신을 다시 정직하게 돌아보게 하였다. 교수 부인은 전혀 음식을 만들 줄 모르는 분인데, 병원과 집으로 집에서 손수 만든 음식을 종종 배달해 온 친구들, 언제든지 필요할 때 전화 한 통으로 저 멀리 플로리다와 매사추세츠에서 수시로 달려온 친구들, 심지어는 병원 라운지에서 며칠을 머물며 함께 한 친구들도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이 밀려올 때 수시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와 쓰러지지 않도록 격려한 친구들도 있고, 심지어는 이들이 기르는 세 마리의 개를 돌보고, 집에 고장 난 것을 고쳐주고, 성탄절 장식까지 해준 이웃들도 있다. 이 교수 부부는 철저한 인본주의, 과학 만능주의자로 나의 여러 번 전도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겠다는 불가지론자이다. 이들을 도운 친구들이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모르나 아무튼 그들의 사랑과 희생은 참 아름답다.
본인이 멀리 사는 이들을 지난주에 방문했는데, 참 기쁜 소식은 편지 내용대로 12월말에 다시 건강한 간을 받아 성공적으로 수술을 끝내고 기대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요양하고 있었다. 생지옥 같았다는 지난 이야기를 하며 친구들의 사랑에 감격해 했다. 이분을 방문하면서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과연 진정한 사랑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까지 사랑하여야 하는 것일까?”라는 것이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고, 또한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했는데, 그 분은 실제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줌으로 최상의 사랑을 실천했다.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신자들이 만일 본인이 속해 있는 교회 내에서의 조그마한 봉사와 희생, 섬김을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으로 알고 만족한다면 이것은 심각히 생각해볼 문제다. 형편없이 낮아진 개신교회에 대한 신뢰도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는 신자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했다. 사망의 어두움으로 신음하는 세상을 치유하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가 말하는 궁극적인 사랑과 섬김은 한 영혼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그 영혼을 품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몸부림치라는 말로 들린다. 간이식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이제 새 생명을 얻었다고 기뻐하는 나의 지도교수도 언젠가는 육신의 장막이 허무하게 무너질 텐데, 그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못내 큰 부담이 되며 내 가슴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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