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년 어느 날, 당시 세계 제1의 해상 강국이었던 네덜란드의 조선업 중심지인 잔담의 한 조선소에서 표트르라는 젊은 청년이 구슬 같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배를 만들고 있었다. 이 청년은 일을 열심히 할 뿐 아니라 기술이 뛰어나서 이 조선소에서 우수 공원으로 뽑혔는데 그가 바로 러시아 역사상 계몽군주로 러시아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표트르 대제이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가 서구에 비해 너무도 낙후된 사실을 개탄하여 러시아 유학생단을 서구에 파견했는데 자신도 표트르라는 이름의 하사관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다른 유학생들과 함께 유학을 떠났다. 그는 조선술과 군함 조종술을 익히고 각국을 돌며 선진과학기술을 습득했는데 영국에서는 건축학을 공부하여 자격증까지 땄고, 당대 최고의 과학자인 뉴턴과 만나 과학 지식을 얻었다.
이듬해 베네치아에서 무기 공장을 견학하던 중 모스크바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여 쿠데타를 진압하고 강력한 개방개혁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는 유럽과 통하는 발트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스웨덴과 두 차례나 전쟁을 했다. 스웨덴으로부터 빼앗은 네바강 어구에 새 도시를 건설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명명하고 유서 깊은 모스크바에서 이 신도시로 수도를 옮겼다. 이 도시에는 유럽 복장과 유럽 언어를 쓰는 외국인들이 득실거려 유럽풍이 넘쳤다. 그의 강력한 개방개혁정책은 러시아의 전통주의와 마찰을 빚어 그의 사후에는 모든 제도가 과거로 되돌아갔으나 후에 예카트리나 2세에 의해 개방개혁정책이 계승되어 러시아를 대제국의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러시아처럼 후진국에서 개방개혁을 통해 세계의 대제국으로 부상한 또 한 나라의 예가 일본이다.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이 이끌고 온 흑선 4척이 동경만에서 개항과 통상을 요구했을 때 일본은 이 함포외교에 굴복하여 200여년간 고수해 온 쇄국정책을 깨고 불평등조약을 맺었다. 이 사건을 통해 국력이 낙후된 사실을 깨달은 일본은 명치유신을 단행, 부국강병을 위한 개방개혁을 서둘렀다. 구미의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한 사절단과 유학생을 파견했고 서양의 제도를 받아들여 서양식 복장과 단발이 유행했다.
심지어는 영어를 국어로 삼자는 주장과 서양인과 결혼하여 인종을 개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개방개혁 풍조가 만연했다.
이같은 과도한 개방개혁 바람은 저항세력의 반발을 사서 명치유신의 주역인 오쿠보 토시미치의 암살사건이 발생했지만 개방개혁은 꾸준히 추진되어 일본은 개항 후 반세기만에 세계열강의 대열에 오른 대제국이 되었다.
일본 개항 150주년을 맞은 지난 2003년, 동경만의 요꼬스카에서는 페리제독을 기념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거행됐다. 이 요꼬스카에는 거대한 페리제독 상륙 기념비가 우뚝 서서 동경만을 바라보고 있다.
한때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으로부터 교조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극단적인 공산주의 체제를 죽의 장막으로 가리고 고립생활을 했던 중국이 지난 12월18일 덩샤오핑의 개방개혁 30주년을 기념했다. 개방개혁 이전에는 세계의 가장 후진국 중 하나였던 중국이 개방개혁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미국의 세계 패권을 넘보는 자리까지 왔다. 후진타오 국가 주석은 기념식 연설에서 “중국에는 3차례의 위대한 혁명이 발생했다”면서 “제 1차 혁명은 쑨중산(손문)선생이 주도한 신해혁명이며, 제 2차 혁명은 중국공산당이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이며 제 3차 혁명은 우리당이 주도한 개혁개방이라는 위대한 혁명”이라고 선언했다.
한국이 지난 수십년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개방개혁의 덕분이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힘쓴 결과 전화기를 구경도 하지 못하고 자란 세대가 세계 전화기 시장을 석권하였고, 자가용 자동차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세대가 자동차 수출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북한이 새해 신년사에서 한국에 대한 비난 수위를 한층 더 높이면서 자력
갱생을 외쳤다고 한다. 최근 부분적인 개방화에 따라 나타나고 있는 체제 누수현상을 다잡고 통미봉남정책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는 이번 금융위기의 확산에서 보듯이 모든 나라가 연결되어 있는데 통미봉남이 과연 통할까. 또 후진국이 개방정책으로 부국강병을 도모할 때 반드시 변화를 수반하는 개혁이 이루어졌던 역사적 사례를 북한이 비켜갈 수 있을까. 북한이 처해있는 참담한 현실을 타개하고 연착륙을 하기 위해서는 개방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인데 그렇다면 개방에 걸맞은 개혁도 불가피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기영
뉴욕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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