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흘러도 소중한 자녀
내리사랑은 변하지 않아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오면 반갑지만 그 자식들이 잘 쉬다가 다시 돌아가면 더 반갑다는 말을 전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은 거짓말이다. 물론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다 쏟아놓으니까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느라 피곤하다. 우리 애들은 요리하기를 좋아하니까 비교적 덜 하더라도, 오래간만에 왔으니까 맛있는 것을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그것도 피곤하다.
또 한 철이 갔으니까 내복, 양말 등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다시 챙겨주느라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방 저 방 내복바람으로 다니던 것도 조금은 자제해야 하니까 피곤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아 이놈들 언제나 돌아가나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자식들이 휭 다시 돌아가 버렸을 때 느끼는 그 쓸쓸함은 그래도 반가움보다는 아쉬움을 더 느끼게 한다.
그래서 명절이 지난 후의 부모들의 대화는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다녀갈 때마다 철이 들어가는 것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면도 적지 않은가 보다. 교회에서 어깨 너머 들은 대화인데 자식들에게는 먹을 것을 덜 먹더라도 언제나 필요한 것은 새것으로 사주는 것이 부모다. 그런데 그러던 엄마한테 장성한 자식이 다녀가면서 자기네는 새로 샀다고 그동안 쓰던 것을 가지고 와서 혹 쓸 수 있으면 쓰시고 그렇지 않으면 누구 주라고 하며 들고 왔다고 섭섭해 하는 얘기였다.
또 한 부모는 아직 메디칼이 나올 나이는 아닌데 몸이 좀 이상한 것 같다고 하니까 한국에 계셨으면 국민보험으로 해결되었을 터인데 그러셨다는 한 마디로 끝이라고 섭섭해 하는 분도 있었다. “치료비 좀 보내 드릴게요, 안심하세요”라는 말은 끝내 못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는가 보다.
우리 아이들은 올해에는 비행기표 값도 다 자기네들이 사서 왔고, 조그만 물건이지만 제법 선물도 들고 왔다. 그렇지만 그 추운 데서 변변한 코트도 없이 지냈으면서 부모 생각을 해주는 것이 너무 기특하고 감사했다. 그래서 캠핑 전문점에 가서 아주 따뜻한 코트를 사주었다. 좋은 장갑도 함께 끼어서.
그리고 애들이 다시 돌아가기 전에 “아무리 바빠도 끼니는 거르지 말라”고 부탁하며 하나하나마다 손에 다만 얼마라도 쥐어주느라고 우리 부부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주고 말았다. 분명 우리 부부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일본에서 연말연시를 맞아 부모님 계신 고향을 찾았던 젊은이들의 짐 가방을 취재해 본 결과 집에 갔을 때보다 돌아올 때 부모로부터 받아온 짐이 약 2배정도 많았다고 한다. 부모의 마음이란 예전이나 지금이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래서 부모들에게서 들은 말 한 마디 더하면, 어느 듬직한 청년을 가진 부모에게 옆에 있던 사람이 “보기만 해도 아주 믿음직하겠어요”라고 했더니 옆에서 이 말을 들은 한 노모는 말하기를 “자식한테 바라면 꼭 실망한답니다”라는 말 한 마디였다. 그 노모는 자식들이 다 효자들인 것으로 잘 알려진 분인데도 말이다.
사실 자식들에게서 무엇을 바란다고 하는 말 자체가 어폐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정성껏 키웠으니 그 애들이 장성해서 부모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려고 할 때 기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랴. 그렇지만 우리 부모들도 그랬고 아무리 자식들이 여유 있게 산다고 하더라도 돌아가시는 날까지 그렇게 자식 신세를 꺼려하시던 것을 기억한다.
자식들이 충분히 할 수 있어서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라고 여행사에서 표를 마련해 드리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꼭 다시, 아니 그 이상으로 돌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혹 용돈이라도 해 드리면 당신들이 쓰시는 것이 아니고 형제 중 가장 어려운 자식에게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갖다 주시곤 했다.
또 우리도 이제 자식들이 하나 둘씩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입장에서 초봉이 얼마나 된다고 오히려 보태줄 수만 있다면 보태주고 싶을 정도로 안타깝고 안쓰러울 뿐,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또 일해서 번 돈을 조금이라도 축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결혼해서 자기들의 가정을 이루고 살 때는 더구나 못할 일이고. 자식 덕에 호사해 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짐 되기 전에 하늘나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애들이 와서 가끔 아픈 적이 있는데 학교별 차이점은 학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다못해 보험까지 차이가 나는 것을 보았다. 군대에 다녀온 아들은 몸이 단단해서 잘 아프지도 않지만 혹시 아프더라도 그때는 재향군인 관활 병원에 가면 되니까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하버드에 다니는 아이들은 졸업하기 전에는 학기 중이건, 방학 중이건 세계 어느 병원에 가도 다 지불되는 아주 좋은 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나이지리아에서 고열로 고생했을 때도 그곳에서 제일 좋은 병원에서 잘 치료받았다고 하고, 시에라리온에서 손가락이 부러졌을 때도, 또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스키 타러 갔다가 부상을 당했을 때도 근처 병원에서 아무 문제없이 치료를 받았었다.
그런데 시카고에서 미술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선택권이 주어져서 조금 저렴한 것으로 했더니 방학 중에도 혜택이 있었지만 일정액의 공제금액을 내어야 했고 단 치과도 자비로 되는 애로가 있었다. 천사 같은 한 치과의사가 그냥 해주었지만 말이다. 얼마나 미안하고 감사했던지.
그러나 주립대학에 다니는 막내딸은 학기 중 학교 부속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지만 방학 중에는 모두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 그 대신 항상 낭비가 없고 보다 현실적이고 계획성 있는 생활습관을 배우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런 일들이 방학에 있던 일이다. 부모라는 일은 나갔다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인가 보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213)210-3466, johnsgwh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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