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출세를 하면 그만큼 더 행복해질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 그 대답이 될 듯하다.
지난 주말 보스턴 글로브지에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와 노화 속도의 상관성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절대적인 권력의 크기를 기준으로 본다면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견줄만한 출세는 없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곳에 앉은 사람을 폭삭 늙게 만든다는 것이 기사의 결론이다.
미국 대통령은 국내와 세계의 온갖 풍상과 맞닥뜨리고 고민해야 하는 자리이다. 정점에 홀로 서 있다 보니 고독할 때도 많다. 언론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관찰하고 대통령은 무자비할 정도로 가차 없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인지 남들은 부러워하는 백악관 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지고 흰머리가 부쩍 늘어난다.
한 저명한 노화전문 학자는 자신이 개발한 공식에 넣어 미국 대통령들의 노화 속도를 계산해 보니 매 1년마다 2년씩의 속도로 늙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당적이나 흡연 여부에 관계없이 똑같더라는 것이다. 백악관 생활 8년을 한 대통령은 16년 더 늙어져서 나온다는 말이다.
원인은 물론 스트레스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채웠을지도 모를 기대수명을 다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행복한 사람은 결코 빨리 늙는 법이 없다.
한국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한국 대통령들의 행복도를 계량화한 한 조사를 보니 이들의 평균 행복도는 5점 만점에 1.5정도에 불과해 일반인들에 훨씬 못 미쳤다. 권력을 손에 쥔 순간에는 날아갈 것 같은 희열을 맛볼지 몰라도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하는 현실은 행복감과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다.
19세기 온 유럽을 지배하고 최고 권좌에 올랐던 나폴레옹은 유배된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기 전 “내 삶속에서 행복했던 날은 단 6일에 불과했다”고 고백했다. 아마도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그 날과 조세핀과 결혼한 날, 그리고 유년시절의 몇 개의 추억들만이 그에게 행복감을 선사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최고 권력자들의 행복도에 대한 연구 들은 나폴레옹의 고백이 단지 감상만은 아니었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행복은 순간적인 느낌이 아니라 지속적인 감정이다. 권력을 잡거나 일확천금을 움켜쥐는 순간 짜릿하지만 머지않아 감정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온다. 우리의 예상이나 기대와 달리 돈과 자리가 행복과 별 연관이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가별 행복도 조사에서 줄 곧 수위를 차지하는 국가는 덴마크이다. 문학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간으로 꼽히는 햄릿의 땅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덴마크는 척박한 땅이다. 기후도 별로 좋지 않다. 국민소득은 이웃 노르웨이 보다 낮고 국민건강 역시 또 다른 이웃인 스웨덴만 못하다. 그런데도 그들보다 더 행복하다.
왜 덴마크 국민들은 행복한가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결론은 조금씩 다르지만 취합해 보면 이렇게 요약된다. ‘지나치게 높지 않은 기대감’과 ‘낮은 상대적 박탈감’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는 환상이 들어 설 자리가 별로 없다. 현실을 냉정히 인식하지 않으면 생존자체가 힘들다. 또 사회 안전망이 잘 돼 있어 국민들 사이에 상대적 박탈감이 형성될 여지가 적다. 덴마크의 사례는 역으로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가 불행감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다음 주부터 매주 월요일자 본지 한국판에는 신년 대기획 시리즈 ‘행복하게 사는 법’이 연재된다.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니. 행복이 무슨 기술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최근 각광받고 있는 긍정 심리학은 “그렇다”고 단언한다. 행복은 피아노 연주나 자전거 타기처럼 배울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요즘 하버드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강좌가 바로 긍정 심리학이다. 이 강좌에는 무려 1,4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몰린다.
그만큼 행복감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 같은 요소들이 실제로는 행복과 별 관련이 없으며 편안하고 친밀한 가족관계, 공동체, 쾌적한 환경, 사람에 대한 신뢰, 스트레스가 적은 출퇴근처럼 아주 단순한 것들이 행복감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긍정 심리학의 기여이다. 이것을 깨닫고 되새기며 작은 실천들을 통해 꾸준히 훈련해 나가면 행복감은 높아진다.
“그리 나쁘지 않네”(Not so bad) “난 괜찮아”(I’m fine). 행복 연습을 이 두 마디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다. 행복의 주문이 꼭 거창하거나 신비로울 필요는 없다. 덴마크의 행복도 바로 이처럼 단순하고 평범한 주문에서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