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변이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기실 소파에 처음 보는 외국인 남자 둘이 앉아 있었다. 간호사는 보이지 않았다. 닥터 변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가운을 갈아입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간호사인줄 알았다. 조금 전 대기실에 있던 사람이었다.
“변대진씨?”
한 남자가 하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닥터 변은 종이를 받아 들고는 그만 의자에 주저앉으면서 눈을 감았다.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십여 년 동안의 일이 자동차가 질주하듯이 빠르게 지나간다.
“닥터 변. 이제 공부도 끝났는데 기분 전환도 할 겸 놀러 안가?”
순조가 옆으로 와 걸으면서 물었다.
“어디로?”
“레익타호 가서 손금 한번 봐.”
“난 그런 것 안 봐. 이미 타고난 운명 그런 것 본다고 무엇이 변할까?”
“그런 것이 아니고, 일확천금을 따러 가자는 거야.”
“난 카드놀이 할 줄 몰라.”
“하기 쉬워, 숫자만 알면 돼. 내일 오후에 가려고 하니 한번 생각해봐.”
닥터 변은 집으로 왔다. 지루하고 힘든 공부는 끝났다. 그동안 못 잔 잠도 자고 병원 가까이 이사하고 병원으로 출근만 하면 된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동안 긴장된 세포들이 풀어졌는지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났는데도 기분이 상쾌하지 않았다. 닥터 변은 커피를 진하게 만들어 마셨다.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할까. 이럴 때 여자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쓴웃음을 짓고는 일어났다. 나갈 준비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닥터 변. 같이 안 가겠어?”
순조였다. 닥터 변은 나가려고 하던 차에 그럼 바람이나 쐴까하고 약속 장소로 갔다. 순조 차에는 중국 친구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세 사람은 으스름이 주위를 덮을 무렵 노름장에 도착했다. 순조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기웃거리다 한 테이블에 앉았다.
“내가 하는 것 잘 봐.”
순조는 백 불을 주고 칩을 받았다. 순조는 닥터 변한테 그때그때 변화되는 일을 설명해 주었다. 한참을 보고 있던 닥터 변은 다른 테이블로 가 카드놀이를 했다. 몇 번 테이블을 옮겨가면서 하다 아침녘에 세 사람이 만났을 때 닥터 변의 호주머니가 제일 두툼하였다. 첫걸음에 재미를 본 후 닥터 변은 자주 노름장를 찾았다. ‘늦게 시작한 도둑이 새벽 다 가는 줄 모른다’고 한 말처럼 주말이면 갔다. 그런 속에서 결혼도 했고, 치과병원 개업까지 했다. 이제 가족도 있고 원장이 되었으면 노름장에 가는 것을 자제할 만도 했는데 그렇지가 못했다.
병원의 수입과 지출을 계산할 때 언제나 빠듯하였다. 그래서 닥터 변은 부족한 액수를 따와야지 하는 마음으로 노름장를 찾았다. 노름장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닥터 변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돌아올 때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허탈한 심정으로 운전을 할 때 속담 하나가 생각났다. ‘굶주린 양반 개떡하나 더 먹으려 한다’는 말이었다. 닥터 변은 지금까지 양심을 속이는 일을 안 했다. 오직 자기한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너무나 다급해 환자의 허위 진료권을 만들어 보험 회사에 보내고 노름장 가는 일을 자제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환자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모든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사람은 배가 부르면 성욕에 눈을 돌린다. 그런데 닥터 변은 노름에 눈길을 주었다. 그동안 노름장에 갖다 넣은 돈 생각이 간절하였다.
“당신 노름장 가는 것 말 안 했는데 이제 간섭을 해야겠어요.”
“돈 안 잃어. 그냥 바람 쐬러 가는 거야.”
“노름판에서 돈 잃었다는 소리 못 들어 봤어요. 그러니 가까운 바닷가로 드라이브나 공원을 산책해요.”
“꼭 그렇게 해야해?”
“이제 식구가 넷이에요. 그리고 우리 결혼 후 이 지역에 병원이 몇 개나 생겼는지 알아요?”
“글쎄?”
“노름에 정신 팔고 있으니 알 수 없지. 여섯 개예요.”
닥터 변은 놀랍다는 듯이 입을 꽉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새로 생긴 병원은 시설도 좋아요. 그런데 우린 뭐예요.”
닥터 변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찻잔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집에 들어오면 피곤하다고 잠만 자고, 쉬는 날은 노름장에 가고.”
닥터 변은 아내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그냥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내는 그동안 닥터 변의 일에 관심을 안 두고 잔소리도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의학서적을 더 읽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라는 말을 했다. 닥터 변은 그런 것이 싫어 더 노름장를 찾았는지 모른다. 사람은 옆에서 올바른 길을 가라고 하면 옆길로 가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지 모른다.
이제 닥터 변은 아내한테 거짓말을 하면서 노름장를 찾았다. 아내의 거짓말에 남자들은 잘 속아넘어간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한테 거짓말하면 십리도 못 가서 탄로 난다.
“거짓말까지 하면서 노름장 가는 당신과 더 이상 살 수 없네요. 우리 이혼해요.”
“뭐! 이혼?”
온순한 여자가 점점 난폭한 여자로 변하고 있다.
“난 노름꾼하고는 살 수 없어요.”
닥터 변 아내는 찬바람을 일으키면서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다.
한편 여자가 먼저 이혼 말을 꺼냈지만 막상 아이들을 생각하니 쉽게 실행을 못하고 있다. 닥터 변 아내는 좀더 두고 보자는 듯이 냉기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변대진씨. 당신을 문서위조 및 보험 사기죄로 체포합니다.”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닥터 변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문 닫고 집에 전화해.”
닥터 변은 사나이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정신 차리고 병원 일에 열중해요.’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그때 말을 들었다면 이런 꼴은 없었을 것인데. 앞으로 아내와 자식의 얼굴을 어떻게 보지. 정말 인간 말자가 되었군.’ 닥터 변은 혼잣말을 하면서 병원 문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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