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귀하고 귀한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인생은 험한 바다와 같은 세상에 세월의 파도와 싸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이 인생을 바다에 비유하였다. “나는 때론 푸른 물결을 가르는 한 척의 돛배가 되어본다. 뱃머리에 올라 앞을 바라보니 집채 같은 파도가 밀려와 눈보라처럼 하얗게 부서진다. 내 인생도리처럼 시련에 머리 숙이지 않고 지나온 상처를 모두 지우며 거침없을 수 있는지.”
이렇게 바다와 같은 인생을 생각하면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노인과 바다’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그 제목에서 흘러나오는 그림은 낭만적이기도 하면서도 무엇인가 애처로운 느낌을 준다. 작은 노인과 큰 바다, 세월의 흐름 속에 주름 잡힌 노인과 늘 변함없이 강하고 부드럽게 다가오는 바다, 결코 바다 앞에서는 포기 않을 것 같은 그 젊음이 이제는 바다 앞에 겸허하게 설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을 상상하게 한다.
역시 헤밍웨이는 노인을 그렇게 표현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노인과는 정반대의 소년을 등장시켜 어린 소년의 순수함, 열정, 꿈을 그려냈다. 그 소년은 바로 노인이 어린 시절을 연상시킨다. 노인도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착했고, 어떤 것이라도 하고 싶은 순수하면서도 강한 열망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바다와 수없는 싸움을 벌인 노인은 바다의 강함과 약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얼마나 바다에 비해 약한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다 외에는 다른 곳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노인은 바다가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었고, 꿈이었다. 포기할 수 없는 자기의 터전이었다. 바다 때문에 공허하고, 바다 때문에 벅차오르는 감정에 자신도 모르게 익숙하게 되고 말았다.
‘노인과 바다’에서 가장 애타는 장면은 84일 동안 그 넓은 바다에서 노인이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돌아오는 장면이다. 바로 그것이 지금 2008년도를 보내는 우리 모두의 심정일 수 있다. ‘노인과 바다’가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한 연약한 노인의 그림 속에 아직도 시들어 죽지 않았던 노인의 꿈과 소망이었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쳐 준 말씀의 교훈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6:11-12)
동네 사람들이 고기 잡지 못한 노인을 놀리는 동안 소년은 노인에게 힘이 되었다. 그것이 노인에게는 위로였고 또 사랑이었다. 그 힘으로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사람은 죽음을 당하지만 지지는 않는다”는 신념으로 고기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였다. 그렇게 힘을 다해 고기를 잡았지만 상어 떼가 고기를 뜯어 먹고 남은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 가운데 노인은 소년을 생각하였다. 소년이라도 같이 있어주면 하였다.
인생의 바다에서 무엇을 잡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세월의 시간 속에 작아진 노인은 비록 넓고 험한 바다에서 잡은 것은 찢겨진 큰 고기였지만 사실 노인은 그 고기에 연연하지 않았다. 노인은 상어와 고기와 싸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것은 죽음 앞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 믿음과 소망이었다. 그러면서도 소유에 대한 집착보다는 한 사람에 대한 애정, 소년과 함께 있고 싶은 애정이었다. 비록 자신은 떠날 지라도 소년에게 작은 사랑과 꿈을 남겼던 것이다.
2008년이 비록 아무것도 잡은 것이 없는 빈 배로 돌아올지라도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 마음이 문제이다. 우리의 마음만큼은 가득차야 한다. 흐르는 세월 앞에 겸허한 노인의 인내, 그리고 험한 세상의 바다 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는 인간적인 애정만 갖는다면 우리는 큰 고기를 낚는 인생이 될 것이다. 2009년에는 그런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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