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800만달러(+최대 500만달러 옵션) 계약.
빅유닛(Big Unit) 랜디 잔슨이 결국 고향팀에서 커리어를 마감하게 됐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다. 올해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 자이언츠는 랜디 잔슨, 배리 지토, 팀 린시컴까지 사이영상에 빛나는 투수 3명을 보유하게 됐다. 베이 브리지 너머 오클랜드 A’s도 잠자코 있지만은 않는 모양이다. 뉴욕 양키스에서 자유계약선수(FA)로 풀려난 바비 아브레유와 LA 에인절스에서 자유의 몸이 된 개럿 앤더슨을 둘 다 혹은 둘 중 하나라도 영입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둘 다 올스타급 외야수로 강타자다.
◇잔슨 SF행 : 수퍼스타 왼손투수 랜디 잔슨은 만 45세다. 한국식 계산법으로는 새해 1월이면 47세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만 20여년을 보냈다. 웬만한 직장인이라도 이쯤 되면 장기근속 기념반지를 받을 법한 장수다.
실력 없으면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든 메이저리그 야구판에서 잔슨이 그토록 장수할 수 있었던 건 두말할 나위없이 실력 덕분이다. 2m10cm에 가까운 큰 키(빅유닛이란 애칭은 여기서 나왔다)에서 내리꽂는 백도어 슬라이더는 가위 일품이다.
한창 때는 오직 이것 하나만으로도 타자들을 마음껏 요리했다. 특히 왼손타자들은 잔슨의 밥이나 다름없었다. 안그래도 둔덕처럼 돋아놓은 마운드에서 그 큰 키, 따라서 팔도 다리도 길디긴 그가 던지는 슬라이더는 왼쪽타자 입장에서는 공이 등 뒤쪽에서 튀어나와 오른쪽 팔꿈치를 스칠 듯 휘어져 스트라익 존에 걸치거나 꽂히는 것을 그냥 바라만 봐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백도어 슬라이더란 명칭 자체가 마치 밤손님이 뒷문을 살짝 따고 침투하는 것에 빗대어 생겼다.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에서 한시즌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투수 1명씩 선정해 시상하는 사이영상을 잔슨은 5차례나 받았다. 2001년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커트 실링과 함께 무적 원투펀치를 형성, 신생 D백스를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려놓고 실링과 둘이서 공동 MVP가 됐다. 승부욕도 대단했다. 한창 때 그는 9회까지 완투하면서도 시속 100마일 안팎 패스트볼을 남발이다 싶게 펑펑 던졌다.
워낙 장신인데다 조금은 특이한 피칭폼(정통파라기보다 왼팔을 30도쯤 뉘어 쭉 뻗은 상태에서 던지는 3/4쿼터형) 때문에 그의 패스트볼은 여느 투수들의 패스트볼과 확연히 달랐다. 우선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가 왼손타자들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오른손타자들 눈에는 투수판쯤에서 스트라익 존으로 이어지는 정상궤도 선상이 아니라 한참 멀리 벗어난 지점에서 측면사격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잔슨도 나이는 속이지 못했다. 공보다 먼저 몸이 말을 안듣기 시작했다. 30대 초반에도 이상증세를 보였던 허리는 40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삐걱거렸다. 무릎 등 다른 부위도 말썽을 자주 일으켰다. 게다가 2001년 D백스의 월드시리즈 제패 이후 그가 ‘뜨겁고 건조한 사막지대’ 애리조나를 떠나 동부(뉴욕 양키스)로 간 것은 결과적으로 큰 패착이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간판투수였던 그가 신생 D백스로 간 것은 사실 신경성 통증에 시달리는 허리를 잘 건사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동부로 가면서 몸은 몸대로 힘들어지고 나이까지 들어간데다 잘해야 본전인 ‘양키스 병’ 혹은 ‘양키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그는 진퇴기로에 놓이기까지 했다. 부진에 수술에 잔슨의 시련이 몇해동안 계속됐다. 퇴역식만 남은 녹슨 항공모항 처지였던 그가 올해 거뜬히 두자릿수 승리 등 준수한 성적(11승10패, 평균자책점 3.91)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돌고돌아 다시 ‘신토불이’ 사막 마운드로 귀환한 덕분인지 모른다.
잔슨은 올시즌을 끝으로 FA가 됐다. 은퇴를 했어도 진작에 했을 그는 새로운 모험보다는 몸에 딱 맞는 D백스 마운드에 남기를 원했다. D백스는 그의 나이와 연봉을 버거워했다. 잔슨은 연봉은 얼마든지 깎아도 좋으니 남게만 해달라고 낮췄다. D백스의 결별의지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잔슨은 FA시장에서 새 주인의 부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현역투수로서 잔슨의 새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은 이곳이다. 물밑협상에 최근 자이언츠와 잔슨은 계약서에 사인했다. 연봉 800만달러에 1년짜리다. 올해에 비해 연봉이 절반가량 줄었지만 성적(승수 평균자책점 등)에 따라 최대 500만달러까지 보너스 옵션이 달린 계약이다. 보너스를 한푼도 못받더라도 800만달러는 잔슨이 내몰리기 직전에 D백스에 제시했다는 연봉(보도에 따르면 400만달러)보다는 훨씬 많다.
잔슨에게 샌프란시스코행은 또다른 의미가 있다. 이스트베이의 월넛크릭 태생에다 아직도 그곳에 노모가 살고 있는 잔슨으로선 2009년 자이언츠 마운드 출격은 최후의 귀향피칭이 된다. 그는 이미 내년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해놓은 상황이다. 게다가 그는 내년에 평소실력의 몇분의 몇만 발휘해도 대망의 300승 고지에 오르게 된다. 198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그는 올해까지 21년동안 295승 160패 2세이브(평균자책점 3.26)를 기록했다. 완투 100회에 완봉승 37회다. D백스를 월드챔피언에 올려놓은 2001년 시즌에는 무려 372차레나 삼진아웃을 잡아 메이저리그 통산 한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을 보유중이다. 통산 탈삼진은 전설적 텍사스특급 놀란 라이언에 이어 2위다.
잔슨의 SF행은 이와함께 자이언츠에 사이영상 투수 3명의 동거라는 볼거리도 된다. 좌완 에이스 배리 지토는 2002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받았고, 우완신인 팀 린시컴은 2008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차지했다. 잔슨은 1995년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으로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받은 데 이어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소속으로 4년 연속 사이영상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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