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속에서는 항상 성공하는 기업과 실패하는 기업이 교체되어간다.
이러한 현상을 경제학자 슘페터는 창조적인 파괴라고 표현했다. 창조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파괴가 필요하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 질서의 파괴 속에도 반듯이 긍정적인 면이 있고 더 나아가 경제적 발전을 위해서는 구질서가 파괴되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경제위기를 80년 전의 대공황에 견주는 학자들이 많다. 그 규모와 깊이가 대공황 이후에 제일 크다는 의미이다. 세계의 석학들이 왜 이렇게 큰 재난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경제학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나는 아직도 분명한 대답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변화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획기적인 생각이나 사건이 당대의 사회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획기적인 사건이 그 사회가 공유하는 통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기 때문에 이를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일컫는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던 개념이 새로운 개념으로 급속하게 대치된다는 뜻이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미국의 경제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릴 것이므로 미국을 위시한 세계경제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입될 것이 분명하다.
레이건 대통령은 침체된 미국경제를 치유하는 처방을 개방된 시장경제에 두었다. 그리고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한다는 정책을 세웠다. 그가 임명한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은 시장경제원리의 신봉자였고 레이건 경제를 성공시키는데 앞장섰다.
부시 대통령에 이어 클린턴 대통령 역시 시장경제를 승계했고 공화당이 임명했던 그린스펀 의장을 계속 기용했다. 그린스펀의 연방은행은 줄곧 시장의 자율적인 기능이 경제성장에 가장 도움이 된다는 정책을 견지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자정책이 얼마나 주식시장의 움직임에 무력하고 중앙은행이 직접 시장개입을 해서도 안 된다는 입장도 밝히고 있다. 하물며 부동산시장의 버블은 그의 이자정책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 10여년동안 월가는 부동산에 관련된 금융상품을 증권화 하는데 성공했고 이러한 금융상품을 투자가들에게 광범위하게 판매했다. 자본이 없는 모기지 회사들이 우후죽순 나타나서 부동산 융자시장을 독차지하다시피하며 위세를 떨치게 되었다. 부동산시장에 버블이 생길 수 있는 매우 좋은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버블은 막대한 유동성(돈)을 만들어내고 부동산가격을 비현실적으로 상승시키는 작용을 했다. 부동산은 그 용도가치를 떠나 투기의 대상이 되어갔던 것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이 주식시장의 버블에서 기인되었다면 오늘날의 경제위기는 부동산시장의 버블에서 기인되었다는 점에서 자산 인플레의 위력이 상품이나 서비스의 인플레에 비해서 얼마나 강력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미국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미국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아직은 짐작하기에 시기상조일지 모르지만 몇 가지 뚜렷한 변화가 올 것만은 틀림없다.
첫째, 미국경제는 앞으로 상당기간 그동안 쌓인 버블을 소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부동산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일어난 유동성 감소가 소비 감소를 유발할 것이다. 둘째, 기업의 판매고가 증가하지 못할 것이므로 기업의 이익도 좋지 않을 것이고 현재 반 토막 난 주식시장 회복에도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로 매우 중요한 변화는 정부의 방대한 영향력이다. 미국의 중요한 금융기관들이 전부 정부의 구제 금융을 받았기 때문에 정부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훨씬 강해질 것이 틀림없다. 정부는 방대한 공공사업을 통해서 미국경제에 유동성(돈)을 공급할 것이고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모든 기업은 정부의 정책에 매우 민감해야 할 것이다. 기업과 시장의 상관관계에서 기업과 시장과 정부의 삼각관계로 시장경제 체제가 대폭 수정이 될 것이고 이러한 체제하에서 미국의 경제성장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측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신임 오바마 대통령은 30년대의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회복시킨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많은 은행과 기업을 시장경제 원리 하에서 살려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위험수위까지 올라간 실업률을 공공사업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늘로 날아가 버린 막대한 유동성(돈)이 만들어낸 공백을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어느 정도 메우고 나면 미국 화폐에 대한 세계적인 신임도는 어떻게 될 것인지도 걱정이 된다. 유럽, 일본, 중국 등 미국의 주요 교역 국가들도 경제위기를 당면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미국은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인지 오바마 팀은 세계 경제계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명석하고 냉정한 오바마 신임 대통령에게 우리는 불가피하게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벤자민 홍
전 새한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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