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름지기 말년이 좋아야 한다는데 떠나는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임기 말년이 별로 편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모든 이의 선망을 받는 권좌임은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 행복한 자리만은 아닌 것 같다. 오죽했으면 건국 초기 2번이나 대통령을 지낸 앤드류 잭슨은 백악관 시절을 “품위를 갖춘 노예생활”이라고 회고했을까. 나라가 잘 굴러가고 있을 때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그나마 홀가분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물러나는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대통령들의 모습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그 고도의 차이만큼이나 깊은 고독을 엿보게 된다.
임기 중 발생한 갖가지 위기로 리더십의 위기를 겪어온 부시가 마지막으로 나선 이라크 방문길에서 한 이라크 기자로부터 신발세례를 받는 봉변을 당했다. 부시의 공과와 그의 재임시절 8년에 대한 각자의 판단과는 별도로 말년의 부시가 겪고 있는 수모는 연민까지 불러일으킨다.
퇴임을 눈앞에 둔 부시가 언론들과 갖고 있는 인터뷰의 톤을 살펴보면 죄의식과 자기 합리화가 뒤섞여 있음을 보게 된다. 미국이 지금의 지경에까지 이른데 대해 미안해 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은 정당했었다는 강변을 잊지 않는다. 현재의 평가보다 역사의 평가에 맡기겠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말년 고생을 하고 있는 부시지만 임기 초년은 좋았다. 미증유의 테러를 겪었지만 그는 이런 상황을 정치적으로 잘 활용했다. 그러면서 지지도가 90%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20%로 역대 최저치이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퇴임 후 그를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무능’은 죄가 아닐지 몰라도 거짓말로 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목숨들을 희생시킨 것은 분명한 ‘음모 및 살인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유명 법조인 빈센트 불리오시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역사학자들은 부시 임기를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현직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운운하기엔 이르지만 학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대략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역대 최저치 수준인 그의 지지도보다는 조금 더 나은 역사적 평가를 받겠지만 ‘무능했던 대통령’이란 수식어는 벗어 던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의 임기 중 다른 대통령 때는 하나도 발생하기 힘든 9.11 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 금융위기 같은 국가적 재난이 3번이나 발생한 점을 들어 불운하다는 동정론도 있지만 그래봐야 ‘무능한 대통령’에 ‘불운했던’이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는 정도가 될 것이다.
기독교 사회학자인 토니 캄폴로는 “사람은 누구나 단 한마디로 기억된다”는 촌철살인의 경구를 남겼다. 누구나 수많은 일을 하고 이런저런 관계를 맺어가며 일생을 살아간다. 그 과정은 무수한 사건과 굴곡, 그리고 영광과 좌절로 점철된다.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단 한마디로 기억된다는 지적은 준엄하기까지 하다.
리처드 닉슨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그는 미국과 중국의 역사적 수교를 이뤄내는 등 수많은 정치적 업적을 남겼지만 세인들은 그를 기억할 때 ‘워터게이트’라는 한마디를 먼저 떠올린다.
주간 ‘타임’에 의해 올해의 스캔들로 선정된 전 뉴욕 주지사 엘리엇 스피처의 성매매 파문도 마찬가지다. 연방검사 출신인 스피처는 검은 돈 등 월가의 부적절한 관행을 파헤쳐 ‘월가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인물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 4월 성매매 추문이 드러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쌓아온 명예와 신뢰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지난 한국 대선에 출마해 한때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는 대선에서 떨어진 후 새로운 당을 만들어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다. 그는 현재 공천헌금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이미지가 깨끗했던 CEO 출신이다. 당시 그는 경영능력도 있고 환경의식도 가진 ‘그린 CEO’로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 이런 평판에 도취된 것인지 아니면 역사적 사명의식에 사로잡힌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스타일을 많이 구겼다.
공천헌금 재판으로 의원직 상실위기에 처해 있는 그는 며칠 전 “그냥 CEO로 있을 걸 잘못했다.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며 후회의 감정을 토로했다. 그가 앞으로 어떤 삶을 계획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으로서는 ‘성공한 CEO’보다 ‘실패한 정치인’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어쩌면 세인들의 뇌리에 새겨질 단 한마디의 묘비명을 쓰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억은 성공과 실패, 그리고 명예와 불명예의 연속 가운데 마지막 것에 의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끝이 산뜻해야 하고 말년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현재 사회, 정치, 경제, 종교적으로 성공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이런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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