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은 ‘동양의 유대인’으로 흔히 불린다.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강하고 악착같이 돈을 벌어 경제적 안정을 빨리 이룩하는 점 등 닮은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차이도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자기 역사에 대한 기억력이다. LA에 있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들은 다 아는 일이지만 미국 공휴일도 아닌데 학교가 문을 닫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이런 날들은 유대인 명절이다. 미국까지 와서 유대인들 명절까지 우리가 기억을 해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유대인의 힘에 놀라기도 하지만 자신의 역사를 자녀들에게 교육시키겠다는 그들의 의지에 결국 감탄하게 된다. 유월절을 비롯 수천 년 전에 일어난 일들을 상기하며 민족혼을 다지는 정신상태가 2,000년 동안 타향을 방황하면서도 잃은 나라를 되찾게 만든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인들은 고작 1년, 아니 몇 달 전 일에도 별 관심이 없다. 19일이면 한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지 꼭 1년이 된다. 작년 이맘때를 돌이켜 보면 한국 전역이 BBK 문제로 북새통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사기꾼 김경준과 공범이며 그런 사람을 대통령 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신문과 TV를 가득 메웠다. 한나라당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로 구성된 검찰이 수사해 혐의가 없음을 밝혔음에도 야당은 편파 수사라며 강력 반발했고 결국 특별 검사까지 임명해 다시 수사를 벌였지만 혐의 없다는 사실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작년 내내 ‘김경준-BBK-이명박’ 노래를 불렀던 그 수많은 정치인과 언론인 누구 하나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며칠 전 앞장서 BBK 노래를 부른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정 전의원은 이 메일 조사 결과 김경준의 주장이 허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끝까지 이명박 후보를 물고 늘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도 그는 사죄는커녕 자신이 정치 공세의 희생양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멀리 1년 전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 지난 4월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자 전국이 난리가 났다. ‘미국산 쇠고기 먹고 일찍 죽기 싫다’며 어린 10대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왔고 전교조와 야당, 반미 단체, 친북 세력 등이 박수 치며 이들을 격려했다. 앉은뱅이 소가 언론에 의해 광우병 소로 둔갑하고 ‘한국인은 특히 광우병에 잘 걸린다’는 전혀 과학적 근거 없는 낭설이 진실처럼 유통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니홈피는 미국 쇠고기 수입 확대에 항의하는 글로 마비됐다. “우리 보고 죽으라는 거죠? 미국이랑 사이가 좋으면 뭐해요.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라는가 하면 “아무리 미국한테 좋게 보이려고 해도 정도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다니요. 이건 우리가 자살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라는 글들이 넘쳐흘렀다.
그 후 8개월 후인 지금 일반 마트에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은 미국산 쇠고기가 하얏트와 힐튼 등 국내 특1급 호텔에서도 음식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호텔 경영진들이 머리가 돌지 않고서야 이런 결정을 내렸을 리 없다. 그러나 호텔 경영진은 머리가 돈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까지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죽은 한국인은 하나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확률이 벼락에 맞지 않을 확률보다 높기 때문이다.
쇠고기 파동 때문에 한국 식당들은 쇠고기를 쓰는 요리마다 일일이 원산지를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그 불편은 끝없는 촛불 시위로 한국 경제와 한국이라는 이미지가 받은 타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한국민과 한국 정부는 BBK와 광우병 소동의 원인과 결과를 기록으로 만들고 책임자를 문책해 앞으로 아무 것도 아닌 일이 한국을 뒤흔드는 대사건으로 부푸는 사태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역사를 되풀이하는 벌을 받는다. 역사의 벌을 받지 않는 민족이 되자.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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