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교류 협력관계를 중단함으로써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자 햇볕정책의 기수를 자처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기를 들고 나섰다. 그는 현 정부가 대북 강경정책을 써서 남북관계가 파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야당과 시민단체가 연합하여 반정부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한국 내에서 이른바 남남 갈등이 증폭될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남북 경색은 북한에 대한 상호주의를 원칙으로 한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시작되었지만 최근의 경색 국면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계기가 되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와 대화를 거부해 왔지만 대북 전단 살포가 심해지자 접촉을 요청하여 전단 문제를 제기했다. 남한에서 전단 살포를 자제하지 않으면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한 북한은 결국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교류협력관계를 중단시켰다.
최근에는 북한이 군인들을 동원하여 전단을 수거하고 있다고 하니 이 전단이 얼마나 골치아픈 문제인지 짐작할 수 있다.그런데 최근 남북관계의 경색은 북한의 내부사정 때문에 불가피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남북교류협력관계의 축소와 함께 북한 내의 중국 기업에 대해서도 철수명령을 내려 중국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북한 내각은 지난 달 초 각 지방에 종합시장 개편에 관한 지시문을 내렸는데 이에 따르면 전국 시장은 한달에 3번만 열어 농산물만 거래할 수 있으며 모든 공산품은 국영상점에서만 판매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일련의 조치는 개혁 개방의 측면에서 심각한 후퇴를 의미하며 자본주의적 경제변화에 대한 단속을 의미한다.
북한의 시장은 1990년대 초 배급제가 붕괴하면서 주민들이 먹고 사는 방편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주민들은 이 시장에서 팔기 위해 가내 수공업으로 물건을 만들고 밀무역을 통해 외제 물건을 들여왔다. 예나 지금이나 시장에서는 많은 소문이 떠돌고 특히 외부세계의 소식을 극력 차단하고 있는 북한과 같은 나라에서는 시장의 거래를 통한 인적 물적 교류에서 바깥세상의 사정이 전해진다.
그래서 북한은 지난 2004년부터 시장에 대한 단속을 시작하였다. 2005년 배급제를 일부 재개하면서 2006년에는 남자들의 장사를 금지했고 2007년부터는 50세 미만의 여자들도 장사를 하지 못하게 했다. 이번 종합시장 개편은 이런 단속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지난 1991년 사회주의 경제권이 붕괴한 후 북한은 나진선봉지구 자유경제무역지대와 신의주 경제특구로 경제난을 타개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개혁개방의 의사는 없이 주민의 눈과 귀를 막아 자본주의의 바람은 차단한 채 돈만 벌어들이려는 ‘모기장 개방’이었기 때문에 모두 실패했다. 개성공단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추진한 것인데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 우려가 있으니 북한으로서는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중국의 연변 조선족자치주에 인접한 국경지대에서는 남한의 물건이 많이 유통되고 있고 특히 남한 비디오를 통해 생활상도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아무리 모기장을 잘 쳐도 틈새를 통해 바람과 함께 모기가 들어가기 마련인 것이다.
특히 지금 북한은 김정일이 와병 중이며 정치적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불안이 증폭되어 체제가 약화되는 일은 결코 방치할 수 없을 것이다. 대남교류를 최소화하고 중국 기업을 철수시키고 국내시장을 통제하는 것이 모두 체제 누수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북한 내부의 권력관계가 정리될 때까지는 북한의 발전적인 대외정책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면서 남한을 압박하여 전단 살포를 막는다면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두는 셈이다. 또 남북문제로 남한의 남남갈등까지 조성한다면 일석삼조가 될 것이다. 북한이 국내 사정 때문에 남북관계를 경색시키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상황에 대비하면서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정책으로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일은 한국의 국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기영
뉴욕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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