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회담이 아무 성과 없이 끝났다. 5개월 만에 어렵게 다시 열렸으나 북한의 핵 신고서 검증 거부에 막혀 결국 결렬되고 만 것이다.
예상됐던 일이다. “(북핵) 검증방범은 현장 방문, 문건 확인, 기술자들과의 면담만으로 한정되며 그 외의 것을 요구하면 전쟁을 불러올 것이다.” 한 달 전이었나. 북한 의무성의 이름으로 이런 성명이 나온 게.
회담이 열리기도 전부터 으름장이었다. 그리고 당초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게 북한 김정일 체제다. 핵은 바로 체제유지로 이어진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니까. 그러니 협상의 진정성 같은 것을 기대 한다는 것부터가 무리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부시 행정부로서는 망신을 한 셈이다. 뒤늦게 나온 이야기지만 핵 검증문제에 대한 서면합의 없이 ‘구두약속’만 믿고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했다고 한다. 임기 말 ‘외교적 도박’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관련해 책임자 문책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러면서 부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에게 외교적 골칫거리를 떠넘겼다고 지적했다.
“요즘 그들은 성공적인 편이다.” 한 북한 관측통의 지적이다. 그들, 북한 권력집단의 의도대로 모든 일이 풀려나가고 있는 것같이 보여서다.
부시 행정부는 외교 실패의 멍에를 쓰고 퇴장하게 됐다. 거기다가 오바마 행정부 국방장관으로 유임된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인상을 주는 글을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에 게재했다.
북한으로서는 망외의 외교적 득을 본 셈으로, 북한 당국자들의 의도대로 일이 잘 풀려나가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과연 그럴까.
“북한은 군사 공산주의 체제로 퇴행을 하고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인 레오니드 페드로프의 말이다. 군사분계선을 통한 육로가 차단됐다. 개성공단이 폐쇄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6자 회담도 무산됐다.
이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그가 내린 진단으로, 북한 당국의 이 강경 드라이브 일변도 조치를 ‘초조감의 표현’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1월 초 북한 내각은 북한 전역의 종합시장 개편에 관한 지시문을 전달했다. 요지는 내년부터 북한 전국에서 열흘에 한 번씩 매달 3일만 장을 설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시장경제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그 타이밍에 주목했다. 개성공단 폐쇄불사, 군사분계선을 통한 육로차단 등 북한 권력집단의 잇단 강경발언이 나온 때와 같은 시기에 이 같은 지시문이 하달된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일종의 전략적 결단이다. 시장은 항상 바쁘다. 그 가운데 위험한 이야기가 나돈다. 그 시장이 체제유지에 악몽이 될 수 있다. 자유를 추구하는 시장 세력에 더 이상 양보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내려진 결단으로 본 것이다.
북한의 시장은 대기근이 발생한 90년대부터 형성됐다. 이 시장을 통해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목숨을 건졌다. 10년 전 북한 주민은 스스로 자본주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수백만이 굶어죽는 절박한 상황을 맞아 김정일 체제는 상황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부터였던가. 북한 권력집단이 반격을 펼치기 시작한 게. 2005년 배급제가 재개됐다. 그 다음 해에는 남성들의 시장 참여를, 2007년에는 50세 미만 여성들의 장사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내년부터는 한 달에 3일만 개장을 허용하는 방침을 시달한 것이다.
뭔가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시장의 자유를 맛본 주민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 세장세력의 확산은 체제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느냐, 죽느냐. 권력집단은 마침내 전략적 결단 을 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렸다는 게 페드로프의 진단이다.
개성공단을 통해 떨어지는 돈은 연간 1억달러가 넘는다. 북한으로서는 엄청난 돈이다. 그 공단을 그런데 포기한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안 좋다는 이야기다. 김정일 유고설이 퍼진 게 벌써 넉 달째다. 감시와 통제는 더 힘들어진다.
또 다른 북한문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의 표현을 빌리면 체제붕괴 위험에 직면한 북한 권력집단은 그래서 ‘체제를 그대로 냉동’(冷凍)시키려고 필사적 노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이 날리는 대북전단에 대해 극도로 신경질적인 것도 같은 이유다. 북한체제 존재의 이유이자, 살아 있는 신(神) 김정일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그 전단 내용은 ‘체제냉동’ 작업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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