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공사 완공시 마지막 침목에 ‘황금대못’ 박는 관행
1869년 5월 10일 유타주 프로몬터리에서
“센트럴 퍼시픽” 스탠포드 사장이 첫 시행.
시공 구간에는 낭떠러지가 수없이 많았는데, 지형이 너무 험해 정상적인 작업을 할 수 없을 경우 몸에 밧줄을 감고 허공에 동동 달려서 삽질과 곡괭이질을 했다. 힘 드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위험한 일들이었다. 강이나 깊은 골짜기를 만나면 교량작업도 해야하는 등 진이 빠지도록 힘든 희대의 난공사였다.
작업조건은 그렇다 치고, 현장에서의 그들의 침식도 결코 합당한 수준은 아니었다. 여름에는 열대지방을 방불케 하는 혹서에 시달려야 했고, 겨울에는 폭설이 내려 덮여 지척을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으며, 공사 기간 중 눈사태로 졸지에 생명을 일은 중국인 인부도 적지 않았다.
벽지 건설공사장에서 현장 숙소 생활의 비중은 참으로 크다. 일에 시달린 몸을 풀고 다음날을 위해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곳이 바로 현지 숙소인 것이다. 먹을 것도 변변치 못한 데에 숙소생활 마저 극도로 빈약해 인부들은 밤낮으로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눈물 나는 고통을 이겨나가야 했다.
센트럴 퍼시픽사는 강인한 체력과 끈질긴 인내력으로 그 험한 지리적인 악조건을 이겨낸 중국인 공부(工夫)가 아니면 감히 시공의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을 텐데, 중국인의 등용으로 최소 6년의 공기를 단축할 수 있었다. 유니온과 센트럴은 목표로 하던 유타주에 접근하면서 차차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 철도 부설의 이익은 시공에서 충분히 발생하였지만 시공 거리에 따르는 정부의 보조금과 과외로 할당된 부설용지의 무상불하로 얻는 수입이 엄청났기 때문에 타사의 노선과의 연결을 재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단독으로 횡단 철로 전장(全長)을 부설하는 것이 득이라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철도회사의 이러한 흉계를 탐지한 정부에서는 양사(兩社) 철로의 영결 지점을 확정하고, 양사에게 당초의 계획대로 하루 속히 그 지점에서 연결하여 하나의 대륙횡단 노선을 완성하도록 의무화 하였다. 이때에 결정된 연결 지점이 훗날 역사에 길이 남게 된 유타주의 프로몬터리(Promontory Summit)이다. 그리고 공사의 지연을 막기 위해서 날짜를 1869년 5월 8일로 확정지었지만 공교롭게도 예정했던 날의 날씨가 몹시 사나워서 연결행사를 5월 10일로 미루어야 했다.
철로는 단단하게 다진 기반에 노선방향과 직각 방향으로 2 피트 정도 간격으로 통나무를 총총히 깔고 그 위에 철로를 두줄 평행으로 놓은 뒤 대못(굵고 긴 쇠못)으로 철로를 통나무에 고정시킨다. 그 통나무를 침목(tie)이라고 하며 대못을 “스파이크(spike)”라고 한다. 철로공사를 완료할 때 박는 마지막 스파이크를 “골든 스파이크(Golden Spike)”라고 한다. 금으로 만든 대못이다. 이 예식은 센트럴과 유니온사가 대륙횡단철로를 “프로몬터리”에서 연결하면서 서로 잇닿는 곳에 금으로 만든 대못을 박는 기념행사를 했는데, 그 행사가 본이 되어 생기게 된 철도업계의 관행이다.
대륙횡단 철도의 완성 기념식은 양쪽철로의 연결지점인 유타주의 프로몬터리에서 1869년 5월 10일에 성대하게 거행 되었다. 양쪽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기관차를 한대씩 행사장에 출동을 시켜 서로 가까이서 마주보게 하고 그 중간에 놓인 마지막 친목에 “황금대못”을 박은 것이다.
이때 사용된 황금 대못은 17.6 karat(73%)의 금과 동의 합금이었으며, 그 대못에는 “태평양철도회사의 이 철도는 1863년 1월 8일에 기공이 되었고, 1869년 5월 8일에 완성되었다”는 문구와 센트럴사 여러 관계자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한쪽 면에는 “이 철도가 세계의 두 대양(大洋)을 연결하듯이 하느님이여! 우리 나라의 통일을 지켜 주시옵소서”라고 새겨져 있다. 이 못을 박을 침목은 월계수를 깎아서 만든 것이며 못을 박을 곳에는 이미 구멍을 내 놓은 것이었다.
이 못을 박을 해머(정)는 은으로 만든 것이었으며, 못을 박은 이는 당시 센트럴사의 사장이며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리랜드 스탠포드였다. 이 황금 대못은 기념식 직후에 뽑아서 회사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1898년에 Stanford 박물관(Iris & B. Gerald Cantor Center for Visual Arts)에 기증했다.
행사가 끝나고 난 직후, 기념식을 위해서 장치하였던 월계수 침목은 일반 실용 침목으로 바꾸고, 황금 스파이크 대신 실용 강철 스파이크를 박고 실재적인 연결이 된 것은 그날 오후 12시47분이었다고 한다. 이 철도 공사는 남북전쟁(1861-1865)의 와중에 착공이 되었고, 전쟁 종결 4년 후에 완공이 되었다. 황금 대못에 특별히 “우리나라의 통일을 지켜 주시옵소서” 라는 말이 새겨 진 것은, 둘로 갈라졌던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그 의의를 되새기기 위한 것이었다.
Stanford가 황금 대못을 박은 순간 미리 준비해 놓았던 무선전신으로 전국에 “done” (끝을 냈다)이라는 신호를 보내어, 이 사실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하였다. 이 통신은 당시까지는 몇 번 없었던 전국적인 보도였다고 한다. 이날 뉴욕에서는 축포(祝砲)를 발사 하였고, 피라델피아에서는 자유의 종을 울렸다. 연방 전국이 축제 기분으로 들끓었던 것.
대륙횡단철도의 개통에 따라, 그때까지 육로로는 수개월, 파나마경유의 배편인 경우도 수주를 요하던 동서 양안 사이의 이동은 1주간으로 단축이 되었다. 1876년 6월 4일 개통된 대륙횡단 초특급은 뉴욕을 출발해서 83시간39분만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는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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