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나에게 서러운 계절이다. 내가 지려 밟고 가는 가랑잎마다 아픈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그 바스락 소리. 12년 전 복면을 한 괴한이 가게 문을 들어서며 아버지에게 총을 쏘았을 때, 그리고 나에게 총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을 때, 몇 번의 찰칵 소리가. 나는 공포에 떨며 그 괴한의 눈과 마주 쳤고, 그의 참담한 눈빛을 보았었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아버지는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인 집 뜨락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가게 손님이 뜸할 때는 나는 어머니 몰래 몇 개의 생선칼을 갈았다. 그리고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벽을 향해 세게 던졌다. 시간이 갈수록 생선칼은 날이 섰고, 매서운 소리를 내며 똑같은 자리에 정확이 꽂혔다. 그 바스락 소리가 들릴 때마다 더욱 날쌔게 날았다. 어머니는 섬세하게 난 칼자국을 보시며 동네 아이들을 나무라셨다.
학교 성적은 그만그만했고, 담임선생은 생활기록부에 집중력이 모자라고 우울한 아이라고 기록했다. 나 스스로도 내가 명석하지 않고, 잘하는 것이 없는, 미진아 처럼 생각되었다. 학교가 끝나면 가게문을 닫을 때까지 어머니를 돕고 생선을 잘랐다. 몸에 비린내가 배어서 반 아이들을 일부러 피했다. 초급대학 진학은 나의 눈을 조금씩 뜨게 했다. 여유도 생겨서 교회에도 갔다.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원을 다니는 또래를 부러워하며 어머님의 독려로 4년제 대학으로 편입을 했다.
세상경험이 많은 전도사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는 나에게 구원과 용서 그리고 사랑에 관해서 가르치려했다. 성경책도 읽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 나는 혼돈이 왔다. 나를 껴안고 왔던 세상에선 나 홀로 나의 보호자인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교회를 떠났다.
대학 졸업이 다가왔다. 마침 국가정보국이 대학을 방문하여 모집원서를 배부했다. 우선 지원서를 냈다. 지원이유 난에 ‘국가를 보호하기위하여’라는 제목으로 9.11 사태를 생각하며 긴 산문을 썼다. 어쨌든 면담과 신체 및 심리검사를 알리는 통보가 왔다. 졸업 직전에 콴티코 해병기지로 오라는 통지와 함께. 피땀을 흘려야하는 신체적응과 정신감정을 거쳐 나는 정식으로 정보 공무원이 됐다.
처음으로 나는 친구 하나를 만났다. 룸메이트인 그는 6척에 붉은 머리를 했다. 그는 나보다 더 말이 없었다. 한가한 시간이 오면 나는 식당에서 가져온 포크나 나이프를 벽에 던졌다. 이 와중에도 그는 조용히 철학책을 읽었다. 때로는 그의 머리 위로 칼이 날아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6개월의 긴 훈련이 끝날 때까지 겨우 몇 마디 했는지 셀 정도가 되었다. 그는 졸업 시 가장 뛰어난 요원으로 뽑혔다.
나는 인도네시아 비자과 부영사로 발령이 났다. 붉은 머리는 본부 정보과에 남았다. 나는 지루한 1년을 비자에 도장 찍는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 대신 나는 열대 숲속을 달리며 원주민이 쓰는 작은 칼을 날려 야자수를 따고 모슬렘교를 이해하고 아랍어를 공부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붉은 머리가 잊지 않고 안부 편지를 보냈다.
본부에서 워싱턴으로 귀국 명령이 왔다. 공항에는 붉은 머리가 말끔한 정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큰 손을 내밀고 악수를 건넸다. 도로변의 나무들은 붉은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가랑잎들이 간간히 차창을 지나갔다. 붉은 머리는 나의 귀국을 환영한다며 조그만 선물을 내밀었다. 내 손에 잡힐만한 은 단검이었다. 나는 웃었다.
부국장은 몇몇의 장군 앞에서 극비 작전 브리핑을 했다. 국장은 붉은 머리와 나에게 44와 43 번호를 하사했다. 우리는 다음날 특별기편으로 카라치로 향했다. 나는 밀봉된 작전 명령서를 자세히 읽고 태웠다. 다음은 파키스탄 수도로 비행했다. 붉은 머리는 마약 상인으로, 나는 비서로 모습을 변장했다. 우리 일행은 밤새 차를 달려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역의 알카에다 장악 지역으로 접근했다. 미군 무인 비행기의 무차별 사격으로 지역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접선자의 안내로 몇 곳의 검색을 무사히 통과해서 알카에다 본부에 진입했다. 10여 명이 우리를 감시하며 따랐다. 나는 감시자의 눈총을 피하기 위해 추위를 참고 카키 상하에 단화를 신었다. 전혀 무기를 몸에 지니지 않았다는 것을 보이도록. 붉은 머리는 영국신사처럼 정장에 유로화가 가득 찬 손가방을 들고 있었다.
밖에서 보기엔 허름한 집안의 좁은 통로는 간신히 한사람이 지나갈 수 있어 붉은 머리 뒤에 내가 바짝 따라 지하 벙커를 몇 개 지나고서야 통로는 두목이 있을 성 싶은 벙커에 멈춰 섰다. 나는 혁대 속에 감춘 작은 비밀 칼들을 감각으로 확인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뒤에서 문이 잠겼다. 사진에서 본 알카에다 1인자가 아닌 2인자 X가 여유 있게 우리를 맞았다. 그는 총을 겨누고 있던 2명의 부하에게 눈짓을 했다. 그들이 총을 내렸다. 붉은 머리가 천천히 돈 가방을 열었다. 부하들이 돈에 주목할 때 나는 손칼 2개를 재빨리 빼서 동맥이 흐르는 둘의 목에 날렸다. 독소가 묻혀있는 칼은 어김없이 그들의 목에 꽂혔다. 동시에 붉은 머리는 유로 돈 바로 밑에 숨겨진 무성 권총을 잽싸게 꺼내 X가 소리를 지르기 전에 그의 가슴에 방아쇠를 담겼다. 포화 소리와 장갑차 소리가 진동했다. 우리는 통로를 잽싸게 빠져 나갔다.
나는 지난 4년 동안 싱가폴 부총영사로 일하고 있다. 영사관에는 추수감사절이라 모두 기분이 들떠 있었다. 총영사가 낯익은 손님을 안내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붉은 머리가 아닌가! 그는 흰 칼라를 한 신부복을 입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조그만 선물이 쥐어 있었다. 나는 “여보게, 자네 이젠 나를 하늘나라로 모시러 왔나? 금 칼을 갖고 왔다 해도 거절하겠네.” 붉은 머리가 말했다. “열어 보게.” 나는 선물 포장을 천천히 열었다. 아랍어로 쓰인 붉은 성경책이었다. 누군가가 음반을 틀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자녀들 아름다운 나라로… 좁은길로만 따라가면 기쁨 충만 하겠네… 우렁찬 남성중창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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