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8일은 역사의 한 전환점을 이룬 날로 기억될 것이다.”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고 있다. 북경 올림픽 개막식이다. 수천명이 동원됐다. 인간은 그저 하나의 점으로 묘사됐다. 이 집단주의 퍼포먼스를 통해 한 가지 강렬한 메시지가 전 세계에 전해졌다. 강한성당(强漢盛唐)의 중화민족주의다.
탱크를 앞세운 러시아군이 그루지야로 밀려들었다. 칸트의 영구 평화의 꿈에 젖어 있는 유럽에서 한 세기 전에나 볼 수 있었던 대대적인 군사적 침공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같은 날 유라시아 대륙의 동과 서에서 동시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뭔가 불길한 그림자가 스친다. ‘권위주의 독재체제의 대두’다. 그 점을 지적하면서 로버트 케이건이 한 말이다.
“한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위기다.” 이번에는 앨런 그린스펀이 중얼거렸다. 월스트릿이 붕괴됐다. 금융위기가 거대한 쓰나미가 돼 전 지구촌을 흔들고 있다. 9월에 내습한 사건이다. 그래서 9.11 사태와 비교됐다. 그러나 파장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는 진단이다.
역시 역사적이다. 미국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권좌에 흑인이 오른 것이다. 세계사를 통틀어 일찍이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이는 그러면 위대한 미국의 꿈과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인가, 아니면 ‘미공화국’의 쇠락을 알리는 전조인가.” 금융위기라는 현실을 안고 등장한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과 관련해 한 논객이 던진 질문이다.
하여튼 엄청난 사건의 연속이다. 불과 몇 개월이지만 그 전과 후가 전혀 다른 세상 같다. 대사건의 연속인 이 2008년이 끝자락을 드러내고 있는 시점에 또 심상치 않은 사건이 터졌다. 뭄바이 연쇄 테러사건이다.
‘이머징 마켓’의 상징이다. 어쩌면 미래의 뉴욕인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파워’ 인도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다. 그 뭄바이가 초토화됐다. 불과 10명의 테러리스트들의 기습으로 인도의 심장이 한동안 멈추다시피 한 것이다.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테러전쟁이 한창일 때다. 아시아 타임스지는 테러전쟁이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 에세이를 게재했다. 유대·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의 충돌이란 시각에서 테러전쟁을 보면서 시도한 분석이었다.
언제 테러전쟁은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 있나. ‘파키스탄의 핵’이 ‘이슬람이스트의 핵’이 될 때다. 이 잡지가 내린 결론이다. 이 악몽의 시나리오는 근거는 정부 따로, 군부 따로, 그리고 정보기관 따로인 파키스탄 권부의 내부사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특히 정보기관은 정부 내의 정부 같은 존재로, 크고 작은 대부분의 테러사태에 정보기관이 관련돼 있다. 관련해 주목되는 대상은 ‘라쉬카르 에 타이바’(Lashkar-e-Taiba)란 파키스탄 내 이슬람이스트 테러집단이다.
파키스탄 정보기관인 ISI(Inter-Service Intelligence)를 그 산파로 태어난 조직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 이르기까지 모든 테러행위를 도맡다시피 했다.
특히 우려를 자아내는 부문은 이 테러조직이 파키스탄 원자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A.Q. 칸 박사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칸 박사가 리비아, 북한, 이란 등과 핵 기밀거래를 할 때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이슬람이스트 핵’을 만들어라. 알카에다를 필두로 한 이슬람이스트 테러집단의 염원이자, 전략 목표다. 말하자면 그 목표 달성의 첨병역할을 해온 것이 바로 이 테러조직이다.
뭄바이 테러사건도 이 조직이 그 배후인 것으로 점차 드러나고 있다. 테러의 목적은 인도와 파키스탄을 전쟁에 몰아넣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럼으로써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전선을 약화시킨다.
한 가지 더 숨겨진 목표가 있다. 군부가 전권을 장악함으로써 친미성향의 현 정권을 쓰러뜨린다. 그리고 군부에 투입된 이슬람이스트 세력이 전면으로 부상하면서 핵무기를 장악하는 것이다.
몽상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다. 원자탄의 아버지로 전 파키스탄 국민의 숭상을 받고 있는 칸 박사 같은 사람도 이슬람이스트 동조세력이다. 거기다가 군부 내의 이슬람이스트 세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다.
거기다가 파키스탄은 점차 ‘실패한 나라’의 전형이 되어가고 있다. 소말리아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2,000만에 이르는 20대의 젊은 남성들은 직업이 없어 거리를 방황한다. 이들 거의가 문맹수준이다. 테러리스트 양성의 온상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를 뒤흔들 대사건이 또 한 차례 발생한다면 그곳은 파키스탄이 될 것 같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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