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의 관계는 시작부터 편안치 않았다. 처음 뉴스에 잡힌 것은 2년전 오바마가 대선후보 출마의지를 밝혔을 때였다. 상원의원으론 자신도 2선이긴 하지만 초선에 불과한 ‘애송이’의 도전이 너무 괘씸해 힐러리는 의사당에서조차 오바마와 말 섞기를 외면했다. 이렇게 시작된 불편함은 길고 치열한 민주당 경선을 거치며 심화되었고 특히 국가안보·외교 이슈를 둘러싼 공방전은 비판보다는 야유의 색채가 강해 더욱 아물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힐러리가 자부해온 82개국 방문의 경력은 ‘차 마시는 의전절차’로 격하되었고, 오바마가 강조해온 대화의 외교는 ‘안보를 맡기지 못할 미숙함’으로 조롱당했다.
이런 오바마가 이런 힐러리를 자신의 국무장관으로 기용했다. 새 내각의 수석장관을 오만했던 정적에게 내 준 오바마의 포용도 고심 끝에 나왔겠지만, 우습게보았던 정적의 ‘부하’로 들어가는 힐러리의 결단 역시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도박’을 감행하며, ‘자존심’을 굽혀가며 두 사람은 ‘적과의 동거’에 들어간 것일까. 다양한 분석이 미디어마다 가득하다.
우선 오바마의 감행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선거공약을 지키려는 신념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최고의 인재를 불러 모아 통합의 정치를 펴겠다는 약속실현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다. 피나게 부딪쳤던 힐러리와 손잡는 것 보다 더 멋지게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한다.
둘째는 실용적 정치 포석이다. 힐러리만한 카드가 드물다는 실용적 이유도 크지만, 클린턴 일가를 적보다는 내편으로 끌어들이자는 정치적 계산 또한 배제할 수는 없다. 진보 미디어들은 힐러리의 ‘국제적 스타성, 인맥, 백악관과 상원에서의 외교경력, 강인한 기질’ 등을 들어 적임자를 택한 과감한 인선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힐러리의 역량이면 오바마가 경제위기 해결에 전념해야 할 첫 1년 정도는 무난히 외교를 전담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다. 그러나 보수신문 월스트릿저널처럼 ‘외교의 전문지식도 없는 힐러리 기용은 후에 오바마가 값비싼 대가를 치를 명백한 정치적 계산이며 소문난 자신감 과시의 전형적 예’라는 폄하도 없진 않다.
힐러리가 자존심을 굽힌 이면엔 보다 개인적 이유가 언급된다. 그는 민주당 경선 패배후 부통령 후보를 원했지만 오바마쪽의 무관심을 감지하면서 곧 마음을 접고 상원 복귀를 결심했다. 무엇보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평생 숙원과제인 헬스케어 개혁법안의 주도권을 갖기 원했다. 그러나 민주당 원로들로 붐비는 층층시하 상원엔 그가 발 딛을 자리가 없었다. 헬스케어 개혁 위한 태스크포스를 신설해 맡겨달라는 그의 제의는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1,800만 유권자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거의 대통령이 될 뻔 했지만 상원에선 그저 100명 의원 중 하위 서열에 속한 1명에 불과했다.
상원에서의 입지에 대한 실망이 크긴 했으나 11월 중순 오바마에게서 국무장관 제의가 왔을 때 선뜻 응하지는 못했다. 응할까, 말까, 몇 번이나 결심을 번복한 끝에 힐러리가 선택한 것은 상원에서의 ‘조용한 자립’이 아닌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오바마의 휘하였다. “우리시대 가장 위대한 도전에 동참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힐러리의 소감 이면에는,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이 아직도 접지못한 자신의 4~8년 후 대권도전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일단 한 업무에 착수하면 무섭게 집중하며 철저하게 준비하는 힐러리는 이번 주 전임 국무장관들을 돌아가며 만날 예정이다. 성공과 실패의 전형으로 꼽히는 두 사람도 만날 것이다. 아버지 부시의 제임스 베이커 국무와 아들 부시의 콜린 파월 국무다. 평범한 경력으로 입각한 베이커는 성공적 외교수장으로 등극했고 인기최고의 스타장관으로 영입된 파월은 초라한 패배자로 물러났다. 이들의 성패를 가른 것은 대통령과의 관계였다. 개인적으로 절친한 아버지 부시의 절대지지를 등에 업은 베이커는 국제사회에서 “베이커의 말이 곧 부시의 뜻”이라는 확신을 받으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아들 부시를 둘러싼 딕 체니 부통령-도널드 럼스펠드 국방 등 네오콘의 장막 밖에서 왕따 당한 파월은 속수무책, 해외 외교협상 중에도 등 뒤에서 아군의 비수에 찔린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현재 국제외교가는 ‘스타’ 힐러리와의 익사이팅한 대면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실권자’인지 아닌지는 마주앉은 지 5분이 채 안가 드러난다고 전문가들은 장담한다.
대통령 오바마와 국무장관 힐러리의 세부적 외교관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시급히 이루어야 할 목표는 같다. 무력 아닌 외교를 통한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이미지 개선과 영향력 회복이다. 이 목표달성을 위한 기본요건은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대통령과 이를 수행할 국무장관의 ‘한 마음’이다.
‘한 마음’은 아직 아슬아슬, 민감한 두 사람의 관계에 전폭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절대지지가 뿌리내려야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 힐러리를 이너서클로 포용하는 오바마의 리더십이 먼저 발휘될 지, ‘모든 영광은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은 나에게’를 실천하는 힐러리의 희생이 선행될 지…오바마와 힐러리의 관계는 경제위기로 우울한 미 정가에서 잠깐 주름을 펴게 하는 한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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