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 붐’이 낳은 “4대 철도 왕”
대륙횡단 철도로 가주 경제 장악.
1848년부터 동서양의 투기꾼과 한량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캘리포니아 황금 붐”은 “와일드 웨스트 (wild west)”라는 서부적 기풍과,“49er”라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만들어내고, “캘리포니아 드림”이라는 꿈을 자아내면서 역사의 한 구간을 화려하게 장식을 하였지만 결국 185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개를 숙이기 시작해 1855년에는 종말에 다다르게 되었다.
우리 속담에“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XX이 받는다”라는 표현이 있다. 황금을 노리고 국 내외에서 모여든 인파는 300,000이 넘었다고는 하지만 정작 금으로 거금(巨金)을 만들었다는 사람의 이름은 별로 세상에 알려진 바 없다. 이 판국에서 한 밑천을 톡톡히 만든 사람들은 금광꾼이 아니고 금광꾼들이 애써 번 돈을 물 쓰듯이 쓸 때에 그 주변에서 그 돈을 챙긴 사람들이다. 잡화상, 의류업, 철물상, 식품상등 금광꾼들의 보급업(補給業)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실익을 챙겼다는 뜻이다.
특히 49er중에서 리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 마크 홉킨스(Mark Hopkins), 찰스 크로커(Charles Crocker), 콜리스 헌팅턴(Collis Huntington)이라는 네 사람은 “Big Four (4대 철도왕)”라는 이름으로 후에 캘리포니아의 경제를 주름잡는 거부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4대 철도왕”은 “붐”이 고개를 수기자 수송업에 눈을 돌려, 대륙횡단 철도를 계획하고 센트럴 퍼시픽 레일로드(Central Pacific Railroad)라는 회사를 만들고, 리랜드 스탠포드는 사장으로, 콜리스 헌팅턴은 부사장으로, 마크 홉킨스는 회계로, 찰스 크로커는 이사로 취임을 하였다.
리랜드 스탠포드는 뉴욕 태생으로써 21세에 법과대학을 졸업하면서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다. 1852년에 화재로 인해 부모로부터 선사 받은 개인 도서관과 가재를 모두 잊어버리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본인의 형제 5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캘리포니아로 달려가 그들과 합세하여 새크라멘토에서 잡화상점을 경영하다가 도매업으로 전환을 하였다. 사업이 번창해 지면서 좀더 규모를 크게 하기 위해 1856년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였다.
1861년 6월 28일에 상기 3명의 동료와 센트럴 퍼시픽 레일로드를 창업하였고 같은 해에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선출이 되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4대 철도왕”에게는 ”4인조 낙지(octopus)” 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사람들은 낙지다리가 제각기 사방으로 뻗으면서 먹이를 빨아 드리는 것과 같이, 손을 대지 않은 사업이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 관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콜리스 헌팅턴과과 홉킨스는 1855년에 헌팅턴 홉킨스 앤 컴퍼니(Huntington Hopkins and Company)라는 합작회사를 만들었으며 새크라멘토에서 건축 기자재업을 하였다. 당시 금광뿐만이 아니고 새크라멘토의 도시 개발사업이 열기를 띠고 있을 때이니만치 건축 기자재는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는 것이다.
금광 붐 못지않은“건설붐”이 이들을 거부로 만든 것이다. L.A.에 유명한 관광 스팟으로 헌팅턴 라이브러리(Huntington Library)라는 시설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콜리스 헌팅턴의 개인 주택을 공원 겸 사적으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내부의 건물이며 대지의 넓이 등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이기 때문에 관광객을 아연하게 만든다. 이 스팟이 철도왕 중 한 사람의 개인 주택이라는 사실을 알고 관람을 하면 당시의 철도 왕들의 위세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찰스 크로커는 어려서부터 부모 밑에서 농사에 종사하다“금광붐”의 소식을 듣고 49er가 된 사람이다. 금 캐는 일에 몰두하였으나 별 재미를 못 보았기 때문에 새크라멘토에서 의류업을 시작하여 크게 성공하게 되었다. 원래 금융업에 관심이 많았던 터이라 크로커 뱅크라는 은행을 만들어 순조로이 잘 육성을 하였는데 1986년에 윂스 파고 뱅크에 흡수 되었다. 캘리포니아의“올드타이머”들은 이 은행의 간판이 낯에 익을 것이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는 여행자 수표(Traveler’s Check)와 크레딧카드의 시조로 이름이 났는데 누구나가 Express라는 낮말 때문에 신용카드 회사 이름으로 선뜻 받아 드리지를 못한다.
이 회사는 헨리 웰스라는 사람과 윌리암 파고, 버터필드라는 이가 1850년에 뉴욕주의 버팔로에서 속달화물배달회사 (速達貨物配達會社)로 시작한 기업이다.
미국에서 예전에는 포장마차로 지금의 “택배” 같은 일을 하는 업체가 많았는데, 그러한 업종을 “Express Mail업”이라고 하였다. 위 세 사람이 하던 배달 업체의 이름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였으며, 훗날 머니 오더(Money Order)업을 하게 되면서 금융계에 발을 디뎠다. 1891에는 세계최초로 여행자 수표를 발행한 바 있고, 이어 신용카드업을 시작했다.
헨리 웰스가 회사 활동 영역을 캘리포니아까지 확대를 하자고 주장을 하였으나 버터필드 반대하였으므로 1852년에 웰스와 파고 두 사람은 49er가 되어 서부에 진출하여 웰스 파고 은행을 설립하게 됐다. 웰스 파고 은행의 상징이 여러 마리의 말이 먼지를 일으키며 이끄는 포장마차(stagecoach)인데, 은행의 상징으로는 몹시 이색적이지만 이 은행의 모체가 화물배달업 이었고, “금광 붐”이라는 시대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 한다면 그 그림의 뜻을 좀더 재미있게 음미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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