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승8패 부진 딛고
2008년 눈부신 승리 몰이
승부세계와 궁합. 메이저리그야구(MLB)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그곳의 좌완 선발투수 클리프 리의 관계를 보면 이 뚱딴지 같은 단어조합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2007년 인디언스는 막강했다. 그레이디 사이즈모어, 자니 페랄타, 트래비스 해트너, 라이언 가코 등 타자들이 폭풍타를 몰아치며 디비전 시리즈를 먹어치운 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ALCS)에서도 원정 1차전 패배를 보약삼아 2차전부터 4차전까지 내리 승리를 거두며 챔프고지 턱밑까지 진군했다. 그러나 마지막 1승을 남겨놓고 인디언스는 레드삭스 특급투수 자시 베켓에게 막히며 주춤하더니 7차전까지 미끄럼을 타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2008년 인디언스는 말이 아니었다. 작년의 기세는 쭉 빠지고 초장부터 헤맸다. 동네방네 떠돌며 얻어맞고 주저앉고 거듭하다 막판에 좀 정신을 차려 간신히 승패균형(81승81패)을 맞춰놓고 시즌을 마쳤다. AL 중부조 5팀 중 딱 중간 3위였다. 작년 가을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뒤 2008년을 벼르며 물러섰지만 올해는 월드시리즈는 고사하고 포스트시즌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했다.
2007년 클리프 리는 말이 아니었다. 뚜렷한 부상도 아니고 질병도 아닌데 도무지 힘을 쓰지못했다. 선발등판 16게임을 포함해 고작 20게임에 나서 100이닝도 못채우고(97.1이닝) 5승8패에 그쳤다. 방어율은 6.29나 됐다. 한마디로 타자들의 밥이었다. 인디언스는 승승장구 잘나가는데 그는 처져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마이너리그로 강등돼 내가 왜 이럴까 한숨을 지어야 했다.
2008년 클리프 리는 막강했다. 작년에 왔던 부진이 어디로 갔는지 그는 마운드의 제왕처럼 잘던졌다. 선발로만 31게임에 출장해 작년의 두배가 훌쩍 넘는 223.1이닝을 소화하며 22승3패를 기록했다. 방어율은 2.54로 확 낮아졌다. 삼진아웃은 작년 66개에서 올해 170로 늘었다.
인디언스는 왜 작년에 그토록 잘하다 올해 저토록 부진했으며, 클리프 리는 왜 작년에 그토록 헤매다 올해 저토록 맹위를 떨쳤을까. 모르는 일이다. 이렇다 저렇다 그럴싸한 해설들은 십중팔구 결과에 맞춰 붙이는 것들이다. 작년에 클리프 리가 올해처럼 던졌거나 올해 인디언스가 작년처럼 잘했다면? 사후약방문식 원인분석 대신 생뚱맞은 궁합론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나이 서른, 마르고 껀정한 애리조나 출신의 ML 7년차 왼손투수 클리프 리(연봉 400만달러)에게 2008년 아메리칸리그 최고투수상(Cy Young Award)이 주어졌다. 리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영광이요, 인디언스 투수로는 게일로드 페리(1972년)와 CC 사바티아(2007년, 현 밀워키 브루어스)에 이어 세번째 수상이다.
클리프 리의 AL 으뜸투수 선정은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봄부터 일궈온 깐깐한 피칭농사 덕분에 그는 정규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사이 영 상 후보 넘버원이었다. 13일 발표된 미야구협회(BWAA) 투표결과는 그것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했다.
그는 BWAA 정회원 투표에서 28장의 1위표 중 24장을 휩쓸고 2위표 4장을 보태 총132점으로 2위 로이 할러데이(토론토 블루제이스)를 크게 앞섰다. 20승 투수 할러데이는 1위표 4장, 2위표 15장, 3위표 6장으로 총 71점을 얻었다. 이밖에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운 프랜시스코 로드리게스(LA 에인절스), 일본계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레드삭스), 마리아노 리베라(뉴욕 양키스), 마이크 무시나(양키스), 어빈 산타나(에인절스)가 차례로 뒤를 이었다.
리는 아메리칸리그에서 다승 1위, 방어율 1위, 승율 1위(88%)를 차지했고, 피칭이닝과 탈삼진에서는 개인 최고기록을 세우며 2007년 악몽을 180%도 뒤집었다.
아칸소대학을 졸업하고 마이너리그를 거쳐 2002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입문한 뒤 줄곧 인디언스 마운드를 지켜온 클리프 리는 첫 두해동안 아주 드문드문 메이저 마운드 가동시험을 하고 2004년부터 선발투수 로테이션에 붙박이로 끼었다. 그로부터 3년동안 그는 도합 46승24패로 끗발을 날렸으나 작년에 미스테리 부진에 빠졌다가 올해 미스테리 부활피칭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인디언스는 한국인 외야수 추신수가 올해 후반기에 맹활약을 펼쳐 한인 야구팬들에게 더욱 친숙해진 그 팀이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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