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글렌데일의 한 책방을 갔다. ‘요코 이야기’라고 하는 책이 팔리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책꽂이에 이 책이 없어서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일주일이면 책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요코 이야기’가 우리만의 관심거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찔함을 느꼈다.
가주 교육위원회는 지난 5일 공청회를 열고 ‘요코 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를 중학교 추천도서 목록에서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이 책은 알려진 것처럼, 일본계 미국인 요코 와킨스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미국인과 결혼해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저자 요쿄 씨는 일본이 패망하자 나남에서 11세 때 어머니, 자매들과 기차를 타고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귀국한다. 특히 원산에서 폭격으로 기차가 부서진 뒤에는 걸어서 서울에 도착해야 했고,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제시대 한반도에 와 있던 일본인, 이른바 ‘재조 일본인’들이 그 과정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이런 책을 가주 교육위원회 12명의 교육위원이 만장일치로 교재목록에서 삭제하기로 한 일은 미주 한인사회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왜곡된 역사를 잘못 배우지 않도록 제대로 된 교재를 사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런 가운데 가주 교육위원회의 결정은 우리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미주 한인 사회가 이를 통해 뭉친 일은 향후 비슷한 일이 있으면 보다 큰 힘이 될 것 같다.
‘요코 이야기’는 분명한 역사 왜곡이다. 이 책은 ‘재조 일본인’의 해방 공간의 모습을 사실과 다르게 그린 책이다. 문제는 이 책이 미국에서 영어로 쓰여져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국인과 해방 공간의 한국을 잘못 그리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에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세계가 대상이다. 이번 일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미국 땅에서 점검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 왜곡을 거론할 때는 일반적으로 고대사부터 얘기하나, 우리의 피부에 직접 와 닿는 것은 ‘요코 이야기’의 시기인 일제시대다. 일본은 우리 땅을 불법적으로 합방했으며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많은 피해를 끼쳤다. 그리고 역사는 이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 기억은 상당부분 왜곡되어 있고 이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강제연행의 역사이다.
강제연행은 무엇인가. 강제연행이란 일제 식민통치 하의 전시 동원 체제 때 자행된 인력에 대한 약탈을 말한다. 이 용어는 고인이 된 재일 역사학자 박경식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그의 책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에서 강제연행이란 “한국인 노무자가 자유 의지에 따라 이동하거나, 외국으로 이주하지 못하고, 일본인의 전시동원과 달리 피지배 민족의 구성원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되었으며, 중국인 포로, 노무자와 마찬가지로 일본 땅과 다른 지역으로 연행되어, 생사불명, 유골방치 등의 인권무시가 공공연히 행해진 일”이라고 했다.
이후 강제연행에 대한 연구가 일본과 한국에서 진행되면서 그 역사적 사실이 보다 많이 밝혀졌다. 특히 ‘성노예’라고 하는 ‘위안부의 문제’는 아직도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있지 않으나, 한국에서는 역사적 사실로 누구나 알고 있다. 사실 이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것은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생존해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강제연행의 역사는 가슴이 아프지만 분명 우리의 역사이다. 일제는 강제연행을 ‘모집’ ‘관 알선’ ‘국민징용령’ 등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행했고, 노무자, 군인, 군속, ‘위안부’ 등으로 끌고 갔다. 이렇게 끌려 간 피해자의 숫자는 한국 안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까지 포함해 800만 명 선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힘이라도 모이면 큰 힘이 된다. ‘요코 이야기’를 퇴출시킨 이번 기회에 미주 한인사회의 뭉친 힘을 갖고 새로운 역사 교육, 정체성 교육, 아이들의 역사 교육을 시작하면 어떨까. 어린이들을 위한 미주 한인역사 책을 만들면 좋겠다. 아이들은 작은 책을 통해 큰 느낌을 받는다. 어른들의 성과를 위한 책 만들기가 아닌 우리 아이들이 진정으로 좋아할 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김인덕
UCLA 방문교수
성균관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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