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매케인은 역시 명예를 중시하는 군인 출신다웠다. 지난 4일 대선에서 민주당 버락 오바마에 패한 후 그가 보여준 의연함과 품위는 선거전의 패자인 그를 또 하나의 승리자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역구인 애리조나에서 선거 결과를 지켜보던 매케인은 승패가 확실히 드러날 즈음 지지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그리고는 패배를 시인하면서 승자인 오바마에 축하를 건네는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오바마 상원의원은 역사적인 승리를 통해 그 자신과 미국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해냈다.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이 흑인인 부커 T. 워싱턴을 초청했을 때 쏟아졌던 비난을 상기시키면서 흑인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이 이런 잔인한 편견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뼈저린 패배의 아픔 속에서 상대 승리의 역사적 의미까지 언급할 수 있는 패자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선거전이 치러질 때는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싸우다가도 일단 승패가 갈리면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 미국 정치의 풍토이다. 이런 미국의 풍토를 서부시대의 결투문화에서 찾는 논객도 있다. 공정한 룰에 의한 것이라면 목숨이 걸린 결투라 해도 패배는 패배로 깨끗이 받아들인 것이 카우보이들이었다.
또 승패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민주주의의 척도이기도 하다. 선거는 승패를 갈라놓는다. 그러나 이긴 사람뿐 아니라 진 사람도 당당할 수 있는 제도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패배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찾아오리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2000년 대선에서는 앨 고어가, 2004년에는 존 케리가 그랬다. 이들은 정말 아깝게 대권을 놓친 후에도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민주당은 역사를 새로 쓰면서 8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패배는 어떤 경우에도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냉엄한 현실이다. 어떤 작가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지구를 ‘좌절의 별’이라고 표현했다. 매일매일 살벌하게 벌어지는 경쟁과 승부 속에서 승자보다 패자가 더 많은 것은 숙명적인 일이다. 개인들의 삶을 들여다봐도 성공과 승리보다는 실패와 패배의 경험이 더 많은 것이 보편적인 모습들이다. 그렇다면 무수히 겪게 되는 이런 패배의 경험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격투기를 지도하는 무술사범들은 초보자들에게 잘 맞는 법부터 먼저 가르친다고 한다. 대련을 하다보면 항상 때릴 수만은 없고 맞을 때도 있는 법이다. 잘 맞는 법은 배우지 않은 채 때리는 법부터 배우게 되면 한대만 맞아도 그냥 주저앉아 버린다.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잘 맞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은 이런 이치에서다.
패배를 잘 받아들이는 태도를 기르는 것은 맷집 기르기 훈련과 같다. 무한경쟁의 살벌한 분위기가 판치는 한국사회에서는 한 번의 패배를 종종 인생의 실패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최우등생이 성적이 조금 떨어졌다고 자살하고 승부에서 지면 열패감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댄다. 맷집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패배나 실패를 담담하고 의연히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은 그 사람의 격을 말해줄 뿐 아니라 살아가는데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그래서 요즘 자녀 교육법에서는 “승리하는 아이로 만들려면 지는 법부터 가르치라”고 조언한다. 패배를 맛보아야 진정한 승리의 의미를 알 수 있고 패자에 대한 배려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3세에서 6세 사이의 어린 아이들을 잘 관찰해 보면 우리 안에 얼마나 뜨거운 경쟁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면 자기들이 먼저 버튼을 누르려고 든다. 또 경쟁하듯 자동차로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것도 아이들이다. 이렇듯 경쟁심에 불타는 아이들에게 “가끔은 져도 괜찮다”고 가르치는 것은 그들의 훗날을 위해 유용하면서도 소중한 교육적 유산을 남기는 일이다.
매케인의 4일 연설 내용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관련해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전범이라고 생각한다. 이날 시카고 그랜트 팍을 가득 메운 수십만 군중 앞에서 행한 오바마의 승리 연설도 감동적이었지만 매케인의 연설 또한 수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이날 연설 전문을 프리트 해 자녀들에게 읽어 보도록 권유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대선 열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교만한 승자’도, ‘초라한 패자’도 없었다. 최선을 다해 싸웠고 그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두 명의 성숙한 경쟁자가 있었을 뿐이다. 거센 도전과 위기속에서 미국을 지탱시켜 주는 내공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밤이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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