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결전장이던 펜실베니아주에서의 투표 당일 출구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 11월 선거는 여러 면에서 유권자들 중 머리로 투표한 사람보다 감정으로 투표한 사람들이 많았던 선거였다. 아니, 사람들의 감정을 정치적으로 잘 이용한 후보들과 정당이 승리한 선거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전 세계경제를 격랑으로 몰아넣은 여러 요인들. 서브프라임부터 시작한 이 경제위기는 누구의 잘못인가.
그린스펀이 너무나 낮은 이자율을 오래 지속하면서 인간의 탐욕은 여러 곳에서 경제적 위험부담을 너무 쉽게 만들어버렸다. 집값은 영원히 올라갈 것처럼 믿고 능력 이상의 넓고 좋은 집을 사게 된 보통의 주택구입자들부터, 그들에게 변동 이자율을 사탕발림으로 감당하기 힘든 부채 계약서에 사인하게 만들고 그 모기지들을 모아서 여러 번 증권화 시킨 후 이윤을 챙긴 탐욕스런 증권회사며 헤지펀드들, 높은 수준의 보너스와 이윤에 목을 걸고 모든 걸 베팅해서 자기도 망하고 다른 회사들도 궁지에 몰아넣은 월가의 투자은행가들.
그린스펀이 공화당인가, 민주당인가. 경제가 잘 될 때는 그는 양당 모두에서 자기 편이라 우기다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모든 곳에서 참담히 버림받고 어려운 형편에 있다. 이번 선거는 부시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유권자들은 부시가 싫었다. 엄청나게 돈을 퍼부어야 하고 인명을 잃어야 하고 국제사회에서 욕먹는 이라크 전쟁도 싫고, 그가 하는 무식한 언행도 너무 싫었다.
부시 미워하기는 보통 사람들만 아니라 대학가의 지식층에서 더 심했다. 선거 몇 주일 전 일이 있어 들른 프린스턴 동네도 필자가 봉직하는 대학 주위에서 듣던 것과 똑같은 분위기였다. 이번 선거에서의 화두는 부시였다. 오바마의 ‘변화’란 얘기는 여기나 저기나 야당에서 항상 쓰는 구호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그것이 딱 맞아 들어간 것은 부시 때문이었다. 매케인 얘기는 그가 너무 나이가 많다는 얘기를 빼고는 나오지도 않았다. 부시가 미우니까 공화당은 찍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통했던 선거였다.
사실 이번 금융위기와 월스트릿의 문제는 민주·공화 어느 곳에서도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이번의 핵심 문제가 된 월스트릿 규제 불능의 면에 있어서도 그렇다. 지난번 쓴 바 있지만 기본규제 입법이 바뀐 시기는 클린턴이 대통령을 하던 시기였고, 바뀐 법안에 사인한 것도 클린턴이었다.
그러나 공화당 집권 때 일어난 경제위기이고, 부시 감세안 이후 가진 자들이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이 경제적 신분 상승을 못한 것도 사실이다. 대공황 이후 1%로의 고소득층이 가진 재산이 상대적으로 가장 많아진 것도 최근이다. 전국에서 10억달러 넘는 재산을 가진 이가 1,000명을 넘어서고, 오바마의 경제 참모들은 없는 이들에게서 부자들에게로의 재산 이전이 8,850억달러에 달한다고 계산하고 이를 여론몰이로 성공적으로 써먹었다.
월가에서 생긴 경제위기인데 최고경영자들은 너무나 높은 보수들을 챙겼다는 주장도 옳은 얘기였다. 위기 시작 전까지 2007년 최고경영자들의 보수는 20%가 넘게 올라갔고, 평균액수는 1,800만달러가 넘었다. 회사들의 공개 이익금이 위기 전까지도 겨우 3%도 안 되게 올랐다는 사실보도는 이들이 실적과 상관없이 마구 받아먹었다는 얘기가 옳다고 인정하게 된다.
미디어는 공화당 내에서 현실 개조론자인 매케인을 처음에는 띄웠다. 그러나 긴 선거 캠페인을 거치면서 미디어는 오바마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를 제외하고는 선거기간 미디어가 누구 편인가는 모든 이들에게 분명하게 보였다. 미디어와 싸우는 것 같은 매케인에게는 아예 승산이 없었다.
세상이 어렵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바꿔”라는 마음이 여론을 지배한다. 싸늘한 머리 없이 그저 집권자들이 싫은 것이다. 가진 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서 없는 자들에게 주자는 오바마의 전략은 적중했다. 이후의 경제회복에 어떤 정책이 더 좋은가에 상관없이 유권자들은 한번 바꿔야 했고 흔들어야 했다.
이제 우리에게 기다리는 시간이 왔다. 얼마나 오바마 정부에서 노조를 비롯한 리버럴 민주당 세력의 힘에 버티며 제대로 경제정책을 펴나가는가 살펴봐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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